갑자기 현관 비번 누르는 소리가 들려 방에서 나와보니 물에 빠진 생쥐꼴을 하고 누나가 현관 바닥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분명 손에는 우산이 들려 있는데 우산을 쓰고 온 사람의 행색이 아니었다.
"무슨... 일 있어 누나?"
내 물음에는 대답도 않고 신발을 벗더니 곧장 화장실로 들어간다. 문이 닫히고 물소리와 함께 곧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한참동안 폭풍오열을 하더니 발을 씻고 나와서는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린 채 대뜸 내게 그런다.
"나 저 인간이랑 도저히 못살겠으니까 혹시라도 내가 저 집구석에 다시 들어간다 그러면 제발 나 좀 뜯어말려주라."
그러고는 또 그 자리에 퍼더버리고 앉아 펑펑 울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데?"
나는 그녀 앞에 멀뚱히 서있다가 방으로 들어왔다. 쉽게 그칠 울음이 아니었다.
누나가 저렇게 우는 걸 본 게 벌써 두 번째다.
작년 추석 때쯤이었던 것 같다. 이른 아침 문소리에 놀라 깨어서 나와보니 누나가 검정봉지 하나 들고 오늘처럼 현관바닥에 서 있었다. 같은 아파트에 살지만 자주 오가는 편이 아니었던지라 아침 댓바람부터 누나의 방문이 나는 얼떨떨하기만 했다.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주방식탁으로 가더니 비닐봉지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냈다. 식탁 위에 펼쳐놓은 건 맥주병과 마른안주였다.
"같이 마실래?"
그러면서 따라주는 맥주 한잔을 아침 8시도 안 된 시간에 나는 얼떨결에 받아서 마셨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엉? 매형이랑 싸웠어?"
나는 흥분한 채 마구 다그쳤고 그러는 나를 외면한 채 누나는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평소에 술은 잘 먹지도 않는 사람이 작정을 하고 마시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한 병을 마시고 두 병을 마시더니 급기야 눈물이 터졌다. 엄마가 우는 건 종종 봤지만 누나가 소리를 내어 서럽게 우는 건
그때 처음 봤다. 물론 누나랑 같이 살지 않았어서 다 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다 큰 성인이, 그것도 누나가 펑펑 우는 건 내겐 너무 생경한 풍경이었다.
내가 해줄 수 있었던 건 누나의 울음 섞인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뿐.. 간혹 편들어주고 함께 화내는 것 밖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누나는 그때 3일을 머물다 돌아갔었다. 많이 심각해 보이긴 했지만 결국 또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가는 듯싶었는데....
1년 만에 듣는 누나의 울음소리가 그때만큼 충격적이진 않지만 가슴에 뭔가 많이 쌓여있는 듯하다. 내가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안타까울 뿐이다.
어느샌가 울음소리가 잦아들고 옷장 뒤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엄마의 옷장에서 반팔티에 편한 바지 하나 찾아내더니 그걸로 갈아입고는 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한쪽에 개켜져 있는 이불을 펼쳐서 깔더니 그 위에 새우처럼 꼬부리고 누웠다.
나는 충전기와 선풍기를 챙겨서 머리맡에 놓아주고 좀 쉬라고 했다.
송장처럼 그렇게 내내 누워있다가 하룻밤을 자더니
"애들 밥만 후딱 챙겨주고 올게." 그 말과 함께 누나는 사라졌다.
저녁쯤 문자 한 통이 날라왔다.
"둘째 때문에 아무래도 집에 있어야겠어ㅠ"
안도의 숨을 쉬어야 할지 아니면 서운해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뭔가 좀 허전한것 같으면서도
그냥 누나가 별 탈없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
안방 한구석에 누나가 누워있던 이부자리가 아직 그대로다. 치워야지 하면서도 오늘도 나는 그냥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