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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복 Oct 26. 2023

나는 요즘





가스레인지 위 냄비가 부글부글 멸치육수를 우려내고 있다. 꽤 많은 양의 멸치가 군데군데 몰려다니며 누렇고 허연 거품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육수 맛을 보려고 숟가락으로 대충 거품을 거둬내고 한입 맛보는데, 

비릿하기만 한 것이 가뜩이나 불편한 심기 더 불편하게 만든다.


멸치를 건져내고 된장을 풀까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엔 냄비를 통째로 들어 그대로 싱크대에 부어버렸다.

기울어진 냄비에서 흘러나오는 내용물과 함께 하마터면 내 안에서 끓고 있는  정체 모를 그들까지 우르르 쏟아져 나올뻔했다. 


씻지도 않은 냄비를 그대로 싱크대에 처박아둔 채 가게 근처 해장국집에 전화를 걸어 해장국 두 개를 주문했다.


이대로 뛰쳐나가 길거리 한 복판에서 고래고래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충동을 대걸레로 홀 바닥을 박박 닦으며 누르고 또 누른다. 끓어오르던 분노는 결국 눈물이 되어 흐른다.



"멸치육수 끓이던 거 어디 갔어?"

남편이 묻는다.

"버렸어. 내가."






지갑을 챙겨 들고 해장국 집을 향했다.

주방에 선채로 혼자 식사를 하던 사장님이 반갑게 맞아주신다.

"밥을 앉아서 먹을 수가 없네 오늘은."

멋쩍게 웃으며 포장꾸러미를 건네는 사장님의 얼굴이 오늘따라 안쓰럽다.

묵직한 봉투를 받아 들고 돌아서는데 사장님이 파이팅을 외치신다.

"오늘 장사 대박 나!"

"네. 사장님도 대박 나세요!"



해장국 봉투를 껴안고 발길을 돌리는데 문득 눈에 들어온 파란 하늘이 걸음을 멈추게 한다.

눈치도 없이 아름다운 가을 하늘이었다.

멋대로 날뛰던 내 안의 미치광이가 저만치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았다.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분노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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