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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복 Oct 13. 2023

오늘은 출근하지 않았다


출근준비를 다 해놓고도... 출근하지 않았다.


머리를 말리고 얼굴에 대충 한두 가지 찍어 바르고 눈썹정리를 는 것으로 내 출근준비는 끝났는데

도로 방으로 들어가 널브러져 있는 이불 위로 누워버렸다.  빨래를 널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돌릴 시간에 말이다.

눈 감고 그렇게 누워있으니 속에서 무언가 울컥 올라오는 게 있다. 애 둘 등교시키고 나 혼자 종종거릴 시간에 건너편 방에서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매일 달콤한 아침잠에 빠져있는 그 남자가 못 견디게 미워진다.

몸을 일으켜 우당탕거리며 남편이 자고 있는 방문을 열어젖히고 "출근 안 할 거야?" 기어이  한마디를 외치고 다시 방으로 들어와 누웠다.


잠에서 깜짝 놀라 깬 남편은 잠시뒤 화장실로 들어가고, 다 씻고 나온 남편이 출근준비를 마치고 안방을 가로질러 베란다 빨래통에 빨랫감을 가져다 넣을 때까지 나는 미동도 하지 않고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그런 내가 눈에 안 보이는 걸까 남편은 한마디 말 없이 현관문을 나섰다.


'뭐지? 설마 혼자 출근을?'


그럴 리가 없는데?

잠시 그대로 있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현관문을 열고 1층 주차장을 확인했다.

아무리 봐도 차가 없다. 시동을 걸고 내가 나오길 기다려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 눈치가 있으면 내가 컨디션 안 좋은 게 보였을 테지. 그래서 먼저 출근한 게 분명해.'

혼자 멋대로 상상을 하며 나는 미친 척 다시 안방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이불속은 한없이 안락하고 몸은 천근만근 아우성인데  이대로 잠이나 실컷 자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정말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잠시뒤 어김없이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오고 "안 내려와?" 하는 남편 목소리에  서운함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여태 기다렸어? 내가 누워있는 거 안보였어? 나는 당신이 아무 말 없이 나가길래 내가 아픈 걸 아는 줄 알았어."


"그럼 전화를 했어야지."


그는 어디가 아프냐고 했고 나는 허리가 아파서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했다. 애초에 병원 갈 생각은 없었지만 몸이 아픈 건 사실이었.

솔직히 안 아픈데 없이 다 아프다.

그냥 참고 견딜 뿐인데 오늘은  참기가 싫어졌다.


그렇게 예정에 없던 병원행을 하고 의사의 권유로 두 번의 MRI를 찍어 봤지만 다행히 내가 걱정했던 고관절은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허리디스크와 협착증만 다시 확인한 꼴이 되었다.

주사치료를 권했지만 나는 약봉지만 받아 들고 병원문을 나섰다.





온화한 가을날이었다.

집으로 가던 발걸음을 돌려 미용실을 향했다.

한 달에 한번 하는 생존형 뿌리염색, 아직 한 달이 채 안 되었지만 벌써 눈에 거슬리는 허연 그것은 빈약한 앞머리숱을 더 없어 보이게 한다.

귀찮지만 빼먹을 수 없는 월례행사를 위해 미용실 의자에 앉았다.

염색약을 바르고 지루한 시간을 견디기 위해 커피 한잔 마시고 있는데 미용실 원장님의 호들갑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머, 언니! 그 팔찌 뭐야? 너무 이쁘다."


내 옆자리에 앉은 커트손님을 향한 말인듯했다.


"아... 이거요? 회사 후배가 만들어준 레이어드 팔찌인데 금이랑 잘 어울리죠?"


두 여자의 예쁘다는 소리에 나도 궁금해졌지만 염색하는 동안 안경을 벗어놨던 터라 확인할 길이 없었다. 팔찌로부터 시작한 예쁘다는 표현은 곧 가방과 신발과 옷으로 이어졌다.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며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그녀들의 감탄사와 웃음소리 속에 나는 외계인처럼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에 꼭 드는 물건을 소장한다는 건 저렇게 신나는 일이구나.

저렇게 즐겁고 행복한 일이구나...


문득 내가 궁금해졌다.

나는 뭘 좋아하는지, 뭘 갖고 싶은지.

뭘 가지면 아이처럼 뛸뜻이 기쁠 수 있는지.

천천히 생각해 볼 일이다.





염색을 하고 반찬가게에 들러 몇 가지 반찬을 사고 느릿느릿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난장판인 집에서 작은 아이는 친구를 데리고 와 한바탕 라면을 끓여 먹고 있었다.

눈앞의 광경에 헛웃음을 웃는 내게 딸은 그런다.

"엄마, 나도 집이 이 정도일 줄 몰랐어. 우리 얼른 먹고 나갈 테니까 넘 신경 쓰지 마."

아이들은 후다닥 먹고 사라지고 나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밥을 안치고 미역국을 끓이고 이불을 개고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개며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풍겨오는 밥 냄새와 미역국 냄새에 오늘 하루 삐딱했던 마음이 제 자리를 찾는듯하다.


고지식한 내가 참 별로지만 그래도 오늘은 내 몸과 마음의 소리를 들어준 것 같아 아주 조금 맘에 든다.

참고 견디는 것 이젠 정말 지긋지긋하다.


내일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마음이가출하고싶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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