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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복 Oct 28. 2023

 글이 안 써지는 날의 글



"엄마, 나 목이 엄청 아파."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한 채  입만 뻥긋뻥긋하며 작은 아이가 아프다는 의사표현을 해왔다.


"많이 아파?"


아이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마에 손을 얹어보니 다행히 열은 없는데 숨소리가 신통치 않다.

출근을 미루고 병원 갈 채비를 했다.

녀석은 학교 안 가도 된다는 기대감에 두 눈을 반짝이며 쫄래쫄래 내 뒤를 쫓아온다.  그런 녀석을 보니 왠지 나도 외출하는 기분이 들어 살짝 설렌다.



노란 단풍잎이 소복이 쌓인 놀이터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카메라에 슬쩍 담아보는데 그런 나를 보며 아이는 학교 운동장에도 단풍이 엄청 예쁘게 들었다며 쇡쇡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녀석은 곧바로 키부터 잰다.

그러더니 1센티미터나 더 컸다며 아픈 아이답지 않게 호들갑을 떨었다. 

진료를 보고, 약을 타고, 약을 먹.

병원에서의 볼 일은 생각보다 금세 끝났다.

약국 문을 나서기 무섭게  밀크티 사달라는 녀석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공차나들이까지 하게 되었다.






짧은 데이트를 마치고 아이는 집으로,

나는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눈앞에서 버스 한 대를 놓쳐버리고 다음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아무도 없는 텅 빈 정류장 벤치에 홀로 앉았다. 햇볕이 따뜻하다 못해 뜨겁다.

반팔에 얇은 경량패딩차림 계절에 맞지 않는 차림새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불어오는 한줄기 바람은 역시나 가을바람답게 서늘하다.


뜨거운 볕과 시원한 바람사이의 텅 빈 정류장,

그 속에서 그렇게 나는 하염없이 있고 싶어졌다.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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