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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복 Oct 30. 2023

그날 청국장엔 고기가 들어가지 않았다



"청국장에 고기를 넣을까 말까?"


뒷주방에서 남편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 글쎄?... 난 상관없는데."


아르바이트생 없이 혼자 일하는 주말, 식사준비가 쉽지 않아서 가끔 남편이 도와주기도 한다.

청소하느라 내 대답이 건성으로 들린 걸까 잠시 후 또다시 물어온다.


"그래서 고기를 넣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아니 그건 밥 하는 사람 마음이지. 나는 넣어도 상관없고 안 넣어도 상관없다니까."


내 대답이 맘에 안 드는 건지 구시렁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흠.... 알 수 없는 사람!

결국 나는 또 급발진을 한다.


"청국장에 고기를 넣을지 말지 그딴 거 물어보지 말고 친구한테 돈을 빌려줘도 되는지 횟집운영을 동생한테 맡겨도 되는지 그런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나 제발 좀 물어보라고!"


반죽기계 돌아가는 소리에 내 목소리가 묻혀서 주방 면장님에게는 안 들리길 바랄 뿐이다.





요즘의 나는 그렇다.

나에게 어떤 배려와 친절을 베풀어도 남편에 대한 내 원망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무책임하게 벌여놓은 일들이 하나도 수습이 안되어 그것이 결국 고스란히 내 앞에 펼쳐질 때 그걸 외면하지 못하는 나 스스로에게 분노가 끓어오른다. 그 분노는 가끔 나를 집어삼키기도 하고 가끔은  사그라지지 않는 군불 위의 단가마처럼  달달 볶여 바짝바짝 타들어가게 한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했거늘 세상 미련하고 무식한 나는 꾸역꾸역 그 길을 걷는다.

내가 나에게 너무 미안해서 이러다 정말 내가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날이 온다고 해도...

별수 없이 이렇게 구질구질한 글을 쓰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러다가 또 어떤 날은 속없이 깔깔 웃기도 하면서.


사는 게 다 이런 걸까 싶기도 하다가 정말 그런 거라면 이건 비극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그날의 청국장엔 고기가 들어가지 않았다.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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