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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복 Nov 13. 2023

쉬는 날 쉬기만 했다




9시에 퇴근하여 새벽 세시까지 달렸다.

친한 언니와.

토요일을 그렇게 불태우고

일요일은 병든 닭처럼 간신히 버텼다.

밤새는 것도 다 때가 있다는 걸 또 한 번 깨달았지만 내게는 꼭 필요한, 양보할 수 없는 소중시간이기에 밀려드는 피곤함도 기꺼이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월요일, 가게 휴무일이 늦잠 자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지만 아이들 등교 때문에 간신히 일어나서 복닥복닥 두 녀석 챙겨 보내고 나니 잠은 이미 저만치 달아난듯했다. 그렇다고 부지런떨기는 싫어 다시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밀리의 서재에서 재미있는 책을 발견한 터라 그걸 읽으려 했는데 얼마 못 읽고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실컷 자고 일어나 미리 예약해 둔 미용실에 가서 뿌리염색을 하고 근처에서 남편과 간단히 아점을 먹고 났더니  그제야 좀 살만해졌다.

컨디션도 돌아왔겠다 장을 봐다가 밑반찬을 만들까 아님 쇼핑을 할까... 잠깐 망설 끝에 쇼핑몰로 향했. 꿈도 야무지지.

쇼핑몰 1층 행사장에서 큰애가 입을 바지 하나 사들고 위층 단골 가게로 향하는데 다닥다닥 걸려있는 들을 보는 순간 갑자기 피로감이 확 몰려왔다. 옷을 고르고 입어 생각만 해도 도리머리가 쳐질 지경이었다. 

알다가도 모를 변덕스러운 성질 탓인지 아님 저질체력으로 인한 밤샘후유증인지 결국 가게 입구에서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되돌아 나왔다.

쇼핑몰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하는데 머릿속엔 그저 쉬고 싶다는 생각뿐, 반찬이고 옷이고 만사 귀찮아졌다. 불과 30분 전의 내가 맞나 싶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오후 내내 방바닥과 한 몸이 된 채로 리의 서재에서 「잠중록」을 읽었다.

얼마나 재밌는지 꿀잼이란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싶었다. 40대에 들어서면서 온통 자기 계발서 위주로 읽었는데 역시나 내 취향은 소설이었다는 사실에 괜스레 마음이 시큰거렸다.

어려서는 성적 떨어진다고 소설책 보는 걸 굉장히 싫어하는 어른들 때문에 눈치 보느라 맘껏 못 읽고 어른이 되어서는 먹고 사느라 바빠서 가까이하지 못했다. 좋아하는 것에 욕심을 낸다는 건 나에게 있어서 곧 죄책감 연결되는 문제이기도 했으니.



암튼 오랜만에 읽는 소설에 홀딱 빠져서는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뒤늦게 세탁기 속의 빨래가 다 돌아간 걸 알고서도 한참을 미적대다 겨우 몸을 일으켰다. 세탁기가 빨래도 널어주면 참 좋을 텐데 혼잣말을 하며 래를 너는데 큰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엄마, 빨래 널고 뭐 하실 거예요?"


"할 거야 많지. 화장실 청소도 해야 하고 저녁도 해야 하고..."


"엄마, 쉬는 날은 무조건 쉬셔야죠. 저녁에 치킨 어때요? 아들이 장학금도 받았는데 오늘은 제가 쏘는 걸로!"


너스레를 떠는 아이 얼굴을 보며 나는 또 고개를 갸웃하며 그 유혹에 넘어가려 한다.


"엄마, 치킨 먹으며 '나는 솔로'보면 대박 재밌겠죠?"


그 말에 나는 그만 참지 못하고 으흐흐 웃음을 터트렸다.


결국 아들이 틀어준 '나는 솔로'를 보며, 열심히 치킨을 뜯으며 나의 하루는 그렇게 저물어갔다.

쓰다만 글들과 해야 할 일들과 월요일 같은 화요일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애써 모르는 체하며.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본능 #잠중록



왜 이렇게 재밌는거야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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