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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복 Feb 08. 2023

남편이 내 글을 읽은 게 분명하다

「전업주부 8개월 차.... 고비가 찾아왔다」 그 이후

남편이 내 글을 읽은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좋아하던 '도시어부'와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일주일 전 나는 브런치를 통해 「전업주부 8개월 차.... 고비가 찾아왔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발행했다. 마음이 힘들어서 길지 않은 글이지만   이틀 동안 고민하며 아프면서 썼다. 방황하는 남편을 보며 전업이 웬 말이며 글쓰기가 웬 사치냐는 생각에 다 그만두고 예전으로 돌아가야 하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쓴 글이 채 하루가 안돼 다음메인에 걸렸고 조회수는 천을 넘어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글쓰기를 그만두려던 마음은 눈 녹듯이 싹 사라졌고 4일 만에 가게에 출근한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을 때 나는 참지 못하고 자랑하고 말았다.

" 여보, 내가 쓴 글이 다음메인에 올라갔어!"

"그래? 대박! 얼른 찾아보게 전화 끊어."

순간 나는 당황했다. 남편에 대한 글이라는 걸 깜빡하기도 했지만  얼마 전 출간된 내 책도 안 읽은 사람인지라 이렇게 관심을 보일줄 몰랐다.

그나저나 뭔지는 알고 찾아본다는 건지 의아했지만 잠자코 기다렸다.

 곧 남편은 다시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못 찾겠어 여보. 어디에 있다는 거야?"

"글쎄... 어디에 있을까... 나도 찾아봤는데 보였다가 안보였다가 막  그러네."

대충 얼버무리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그날따라 남편은 집요하게 전화로 물어왔고 나는 답답해서 한마디 하고 말았다.

"아... 근데 말이야 당신 뭔진 알고 찾는 거야?"

역시나 남편의 대답은 가관이었다.

"당신 책 얘기하는 거 아니었어?"

"헐......"

"그럼 뭔데?"

"아 몰라... 전업주부에 대한 글이야."

귀찮아서 대충 얘기했다.

"아...! 본 거 같다. 알았어 끊어 "

이 한마디와 함께 전화가 끊어지고 퇴근할 때까지 남편은  잠잠했다.


몇 시간 뒤 퇴근한 남편은 저녁을 차리고 있는 나에게 흘리듯이 얘기했다.

"글이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못 찾겠단 말이야."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궁금해하는 말투가 아니었으므로.

그 뒤로 며칠 동안 글은 계속해서 조회수가 올라갔지만 나는 남편에게 언급하지 않았다.




알바 덕분에 바쁜 주말 장사는 그럭저럭 넘겼지만 한가한 평일이 되자 남편의 방황은 또 시작되는듯하다. 하지만 밥상 앞에서 리모컨을 찾진 않았다. 뭔지 모를 어색한 분위기에 대신 내가 리모컨을 들었다. 식탁에서 느긋했던 모습이 사라졌다. 식사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조금 낯설다. 얼렁뚱땅 밥 한 공기 비우고 커피도 찾지 않은 채 방으로 들어간다.

혼자 식탁에 남아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 생각했다. 남편 내 글을 본 걸까?

밥 먹다 말고 커피 두 잔을 타서 한잔을 방에 있는 남편에게 가져다주었다. 어두컴컴한 방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던 그는 반갑게 커피를 받아 든다.

식탁으로 돌아와 혼자 커피를 마시며 나는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TV화면을 쳐다본다.

이효리가 나오는 '캐나다체크인'이 방송되고 있었다. 캐나다에 입양된 라이언이라는 이름을 가진 강아지와 이효리가 재회하는 장면을 나는 코를 훌쩍이며 보았다. 한참을 훌쩍이다 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 남편에게 말을 건넸다.

"가게에 안 나갈 거면 바람이나 쐬고 오지 그래."

답이 없다.

"응? 여보... 들었어?"

"응. 알아서 할게."

"간 김에 한 이틀 쉬다 와."

선심을 쓰듯 나는 말했다.



모르겠다.

내가 안 나가는 가게 남편이라고 뭐 그리 나가고 싶겠는가....

마음이 힘들면 쉬었다 가야지.

늘 기고만장하던 남편의 날 선 목소리톤이 오늘따라 처져있으니 그것 또한 신경 쓰인다.

내 글이 남편을 주눅 들게 했나 싶은 마음이었다가 아니지? 내 글이 그렇게 영향력이 있었으면 집에서 눈치를 볼게 아니라 가게에 나가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가....


집을 나와 도서관을 향했다.

집에서라도  편히 쉬길 바라는 마음으로.


적어도 1년쯤은 남편 그늘 아래서 팔자 편한 아낙인 듯 연기라도 하고 싶었는데....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랬다고 그 자리가 이리도 좁고 불편할 줄은 나도 몰랐던 거지.


내 맘 같지 않은 남편으로 인해 긴 세월 전전긍긍하며 내가 살아왔듯,

이제는 남편도 예전 같지 않은 나로 인해

내가 속 썩었던 100분의 1.... 아니 10000분의 1만큼이라도 맘고생 해보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야 세상이 좀 공평하지.


나에게 쉬운 날은  단 하루도 없었지만 앞으로의 날들은 지금보다 수월했으면 좋겠다.


잠시 스쳐가는 바람에도 나는 아프다.

남편이 흔들릴까 봐.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전업주부 #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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