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친구 만나러 가고 오랜만에 혼자 하는 퇴근이 왜 이리 신나고 홀가분한지 모르겠다.
집에 오자 바람으로 세탁기부터 돌려놓고 옷만 갈아입은 채 딸아이가 깔아놓은 담요 속으로 기여 들어갔다. 따뜻하다.
하루종일 쑤시던 몸이 금세 노곤노곤해지면서 통증마저 줄어드는 것 같다.
무엇보다 이 시간이면 늘 펼쳐져있던 술상을 안 보니 살 것 같다. 이렇게 평화로울 수가...
심신의 안정이 찾아온다.
핸드폰을 열어 카페에 접속했다. 6일 차 글쓰기를 하려고 막 몇 글자 적고 있는데 딸아이 목소리가 들려온다.
"엄마, 우동 끓여줄까? 나 우동 완전 잘 끓이는데..."
"그래? 근데 그거 너네 비상식량이잖아."
"괜찮아 엄마. 내가 완전 맛있게 끓여줄게."
아이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주방으로 향했다.
안 먹는다고 했다가는 대단히 서운해할게 뻔하다.
마침 배도 고프던차라 잠자코 기다리고 있으려니 우동 끓이는 냄새가 솔솔 풍겨오기 시작했다.
뚝딱 끓여낸 우동을 아이는 어느새 그릇에 옮겨 담아 들고 내 눈앞에 나타났다.
"얼른 먹어봐 엄마."
우동 그릇을 상위에 내려놓으며 딸이 말했다.
꽤 먹음직스러운 비주얼이었다.
두툼한 우동면발을 한 젓가락 가득 건져 입속에 넣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음... 진짜 맛있는데!"
엄지척을 해주니 잔뜩 신이 난 딸,
맛있게 먹고 있는 날 보며 아이가 말했다.
"엄마, 오늘 글은 이걸로 써. '이제 막 13살이 된 딸아이가 끓여준 우동이다!' 이렇게 시작해서 쓰면 될 것 같은데?"
생각지 못한 아이의 말에 우동면발을 입안 가득 밀어 넣던 나는 눈만 휘둥그레 뜬 채 아이를 쳐다봤다.
자기가 말해놓고도 웃기는지 아이는 깔깔대고 있다. 그런 아이가 신통방통해서 나도 어느새 바보처럼 따라 웃어본다.
이쁜 내 새끼! 언제 이리 컸을까...
우동 한 그릇에 내 모든 고민과 걱정과 아픔이 사라지는 밤이다.
미안하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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