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할 당시엔 내 몸이 어떤 상태인지 잘 몰랐다. 그냥 일이 힘들어서 일시적으로 아픈 거겠지...
쉬면 낫겠지 싶었는데 일 년 넘게 쉬는 동안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하며 치료해 보았지만 이렇다 할 차도는 없었다.
결국 언제부턴가 병원에 가지 않았고 나는 통증과 함께 살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벌써 이렇게 아플 나이인가 하며 가끔 우울하기도 슬프기도 했지만 별다른 방도는 없었다. 시간 날 때 걷기 운동만 간헐적으로 할 뿐 그것마저도 두 번째 가게를 오픈하면서부터는 쉽지 않았다.
식당일이란 게 하루 12시간 이상을 종종거려야 한다. 20대 초반부터 시작한 식당일은 정말이지 넌덜머리가 나서 쳐다보고 싶지도 않은데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는 노릇,
내 장사니까 이제는 죽으나 사나 해야만 한다.
작년 12월홀에서 일하던 금희 씨가 그만둔 뒤로 나는 아르바이트생을 뽑지 않았다. 테이블 오더도 있고 혼자 버텨보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버틴다고 버텨지는 게 아닌가 보다. 몸이 자꾸 신호를 보내온다. 결국 오늘은 참을 수 없는 통증으로 급히 금희 씨에게 연락했다. 다행히 아직 재취업을 안 한 금희 씨는 흔쾌히 가게로 나와주었고덕분에 나는 편한 마음으로 병원에 다녀올 수 있었다.
지난번에 MRI검사만 하고 치료는 받지 않았던 병원으로 갔다. 그게 벌써 4개월 전이라고 하면서 의사는 통증이 그렇게 심한 거면 어쩌면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일단 신경치료부터 해보자고 했다. 신경주사를 벌써 여러 번 맞아봤어도 그렇다 할 효과를 보지 못했던 나는 신경치료란 단어가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렇다고 수술은 더더욱 내키지 않으니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주사액이 내 저린 몸으로 퍼져나가는 기분 나쁜 느낌을 오래도록 곱씹으며 오늘 치료는 그렇게 끝났다. 약국에서 약봉지를 받아서 털레털레 집으로 돌아와서는 저녁 내내 뭐 했는지 글을 쓰는 지금에야 약 먹는 걸 겨우 떠올린다. 던져놨던 약봉지를 찾아 급히 여러 개의 알약을 삼킨다.
이 새벽.
부디 이 약 먹고, 비싼 신경주사 맞고 안 아파졌으면 좋겠다. 왜냐 하면 나는 지금 아프면 안 되니까.
지난 몇 년간 내 몸과 영혼을 통째로 갈아 넣으며 수억의 빚을 갚아내며 가게를 안정화시켰지만 결국 그 가게는 곧 폐업할 것이며 돌아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분노는 이미 한바탕 지나갔고 허무함도 곧 지나갈 것이다. 결국 내 앞에 놓인 건 냉정한 현실뿐이다.
몇 년 전 빚에 짓눌렸을 땐 죽기 살기로 미친 듯이 빚 갚는데 혈안이 된 채로 살았지만, 그래서 그 빚이 다 사라졌을 때 어마어마한 허탈감이 찾아오기도 했었다. 이제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바보처럼.
솔직히 그때처럼 그 에너지와 정신력으로 해낼 자신도 없다. 나는 이미 그때의 내가 아니므로.
인생은 끝없는 문제풀이의 연속인 것 같다.
적어도 내 인생은 그렇더라.
지금 닥친 문제를 당장 미친 듯이 풀어내서 없앤다고 한들 그 뒤에 꽃길이 펼쳐지리라는 망상 같은 건 두 번 다시 하지 않으리.
그러니 천천히 가자 천천히... 체하지 않게 천천히.
지난 1년 3개월간 황홀했던 내 시간을 즐기느라 도낏자루가 썩는 줄도 몰랐지.
내 탓이오 내 탓이오 하기엔 그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했어서 가슴만 저려온다.
일장춘몽이었던 걸까.
다시 먼 여정이 시작됐다.
이제는 아파도 안되고 맘 약해져서도 안된다. 그렇다고 전투적인 자세도 금물이다.
고달프고 힘들어서 지옥 같아도 (도망가지 않겠다라고 쓰려다 말았다. 나는 그런 걸 잘 못하는 사람이기에) 그것에 올인하지 않겠다.
내 삶은 그게 다가 아니니까.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는 꿈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아직 다 알지 못한 소중한 내가 있다.
이제 삶의 우선순위 같은 건 없다. 그런 걸 정하는 순간 내 행복은 또 저만치 밀려날 게 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