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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하루

by 순임이


미친척하고 4일씩이나 가게 문을 닫고 쉬었다.

장사 시작하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결정하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지만 쉰다는 건 참 좋은 일인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특별히 어딜 가지 않았지만 그동안 미루었던 일들을 처리하고 남편 건강검진도 받고, 모처럼 나른한? 시간을 보냈는데.



그 후유증일까.



휴가가 끝나고 출근일인 어제는 나름 열심히 일했다.

문제는 오늘,

점심쯤 출근했더니 아르바이트생 민하 씨가 나에게 이상한 얘기를 한다.


"사모님, 사장님이 오늘 점심장사만 하재요."


"뭐?"


인상을 구긴 채 주방에 있는 남편을 건너다봤다.

4일 동안 장사를 하지 않아서 통장이 그야말로 텅장인데 알기는 하는 걸까. 하루라도 쉬면 큰일 날 것처럼 하던 사람이 한번 쉬고나더니 마음이 아직 콩밭에 있나 보다. 흔들리는 눈빛으로 희미하게 웃고 있다.


"오늘 은선 씨도 오랜만에 왔는데 점심장사만 끝내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여보."


"......"


이럴 땐 뭐라 해야 할까.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소리라도 꽥 지르고 싶지만

흠...




은선 씨는 아르바이트생 민하 씨의 엄마다.

작년에 우리 가게에서 일하다가 건강상 문제로 그만두면서 딸 민하 씨를 소개해준 고마운 사람이다. 요 근래 건강이 다시 좋아져서 집 근처 돈가스가게에서 새롭게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한동안 통 얼굴을 보지 못했다. 마침 오늘이 쉬는 날이라 잠깐 가게에 들렀나 본데 반가운 그 마음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걸 핑계로 오후장사를 접자고 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럼 잠깐 가게 문 닫고 밥만 먹고 오자. 갔다 와서 저녁장사는 해야지."


브레이크타임도 없앤 마당에 잠시 외출하는 것도 참 민폐스러운 일이지만 백번 양보해서 남편의 마음을 돌리려 했다. 그러나 이미 고집스러움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남편의 얼굴은 "응, 아니야."를 외치고 있었다.





결국 남편 고집을 꺽지 못하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가게 문을 일찌감치 닫아버렸다. 점심도 저녁도 아닌 애매한 시간에 집 근처 새로 개업한 갈빗집에서 다섯 명이 모였다.

시어머니, 남편, 은선 씨, 민하 씨 그리고 나.

숯불에 구운 고기와 낮술.

하하 호호 즐거운 대화 속에 속 빈 강정처럼 그곳에 나는 앉아있었다. 어디에도 끼지 못한 마음은 정처 없이 떠도는데 얼굴만 열심히 웃고 있었다.


세 시간 가까이 먹고 마시며 웃고 떠들었다. 그 사이 한가하던 가게에 저녁손님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문 닫힌 가게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할 우리 손님들을 잠시 생각했다.





긴 시간을 먹고 마셨는데 다들 헤어질 생각이 없나 보다. 논밭만 보이는 촌동네에는 2차로 갈만한 장소도 없는데 우왕좌왕하는가 싶더니 갈빗집 옆 식자재마트로 우르르 몰려들어갔다. 과일과 술을 사는 그들의 뒤를 멀찌감치 뒤따라갔다.

2차로 우리 집에서 간단히 맥주 한잔 하자고들 하는데 누구 맘대로?

나만 빼고 다들 신난 그들을 그대로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결국 시어머니한테 다가가 말했다.


"엄마, 전 볼일이 있어서 어디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어디?"


"친정엄마한테 잠깐 다녀오려고요. 가게 장사도 안 하는데 시간 날 때 갔다 오려고요."


그렇게 나는 거짓말까지 하면서 도망치듯이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들이 눈치를 채든 말든 그런 걸 고려할 여유 같은 건 없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이미 4일간의 휴가를 통해 충분히 대가를 치르고 있는데 그것도 모자라 한 술 더 뜨는 남편,

뭐가 저리 즐거울까.




내가 없는 집에서 그들이 모여있는 동안 나는 버스를 타고 한없이 헤매고 다녔다. 친정 엄마한테 진짜 갈까 하다가 말았다. 동생이 날 반기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시내 어느 카페에서 머물다가 그 카페가 문 닫을 때쯤 나와서 여기저기 쏘다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집 근처에서 내렸다. 집으로 곧장 들어가기 싫어서 근처 유일하게 하나 있는 편의점엘 들어갔다. 음료수 하나 골라서 계산하면서 몇 시까지 영업하냐고 물었다.


"열한 시 반이면 문 닫아요."


나이 지긋하신 사장님이 대꾸를 했다.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아있었다. 충분하다.

카페에 온 것처럼 창가 쪽 빈 의자에 앉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시골 편의점, 어둠이 내린 컴컴한 창밖을 하염없이 내다보았다. 휑한 도로로 이따금씩 자동차들이 스쳐 지나간다.

도무지 추스러지지 않는 텅 빈 마음.

글로 다독이려 아무리 애써도 돌아오지 않는다.

결국 빈 몸뚱이만 털레털레 집으로 향한다.

모두가 떠난 그곳에는 빈 술병과 술에 취해 잠든 남편만 있었다. 늦은 시간에 기어이 집으로 돌아가신 시어머니는 며느리 없는 아들 집이 새삼 불편해지신 걸까?


오늘은 참 모든 게 낯설게 느껴진다.


나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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