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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복 Feb 25. 2023

나의 두번째 이사

그 겨울 바닷가 작은 마을에는....

급하게 바닷가 어느 마을에 방 하나를 구했다.

그곳에 나를 두고 그는 이삿짐 실으러 떠났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단칸방에  주인아주머니가 가져다준 핑크색 이불을 덮고 방 한구석에 누워 그를 기다렸다. 방바닥은 따뜻했다.


스물다섯, 나는 그와 동거 중이다.

2년이 안된 사이에 벌써 두 번째 이사다.

첫 이사는 당황스러웠지만 두 번째 이사는 아무 생각이 없다. 뭔가 조금씩 꼬여간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받아들이기로 한다. 뭐든 쉽게 체념하는 습관이 어려서부터 뼛속깊이  배어버렸다. 주어진 상황대로 받아들이고 살기에 급급해서 내 감정과 기분은 가슴속 맨 밑바닥에서 숨이나 제대로 쉬고 사는지 모르겠다.


몸이 으슬으슬 추워진다. 몸살인가 보다.

깜빡 잠이 들었다가 문 두드리는 소리에 깨서 나가보니 주인아주머니가 아기를 업은 채 쟁반 하나를 내민다.

"새댁, 아직 밥도 못 먹었지? 있는 반찬이랑 밥 좀 챙겨 왔으니 한술 뜨고 동네 한 바퀴 돌아봐. 바닷가라 좋아!" 아주머니 등뒤로 아기의 뽀얀 얼굴이 보였다. 아기와 눈을 마주치는 날 보며 아주머니가 말을 이었다.

"아... 우리 딸네 애기야. 내가 가끔 이렇게 봐주거든." 그러고 보니 주인집으로부터 동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뜬금없이 눈물이 났다.

꾸벅 인사를 하고 쟁반을 받아 들고 들어와

텅 빈 방에서 꾸역꾸역 밥 한 공기를 다 비웠다. 밥을 먹으니 살 것 같다.

주인아주머니의 말대로 동네 구경을 하려고 슬리퍼를 끌고 나왔다.

집에서 나와 몇 발짝 걸으니 멀지 않은 곳에 슈퍼가 보인다. 슈퍼 앞에는 버스 한 대가 정차해 있었다. 마을버스다. 한 시간에 한대 꼴로 오는 저 버스를 타야 시내로 나갈 수 있다고 했다.


슈퍼에서 사과 한 봉지를 사들고 어슬렁어슬렁 걷기 시작했다.

바닷가답게 크고 작은 고기잡이배가 어수선하게 정박해 있었고 맞은편 도로가엔 횟집들이 줄느런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언니~실치회 드시고 가셔요!"

어떤 여인이 말을 걸어온다.

'대현수산'이라는 간판이 그녀의 머리 위로 보였다.

스치듯 지나가며 본 그녀는 한 눈에도 미인이었다.

"실치회 지금 안 드시면 내년까지 기다려야 해요." 얼굴만큼이나 예쁜 목소리로 그녀는 내 뒤통수 대고 외쳤다.




어쩌다 나는 겁 없이 이 남자를 만나...

낯선 바닷가 마을에서 배회하고 있는 걸까...

나의 대책 없는 용기와 무식함의 끝은 어디일까?

방황하는 내 자유로운 영혼 위로 어지럽게  갈매기가 날고 있다.


 없이 펼쳐진 바다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검푸른 바다와 듬성듬성 보이는 횟집 사이사이로 어둠이 짙게 깔리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매일 마주해야 할 일상이 될 그것들을 뒤로 한채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다음날 아침, 이삿짐과 함께 그가 도착했다.

침대 하나, 옷장 하나, 티브이와 티브이받침대, 작은 냉장고에 세탁기가 우리의 살림 전부였다. 단칸방과 주방에 그것들의 위치를 정해주고  이사를 도와준 기사분과 함께 어제의 그 횟집으로 식사하러 갔다. 꽃게탕을 주문하며 혹시나

그녀를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우리의 두 번째 이사는 그랬다.

아무 계획도 준비도 없이 무작정 이루어졌다.

그렇게 이사 온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매일 보는 바다는 그리 낭만적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나에게 왜 그러고 사냐고 걱정을 해주는가 하면, 필요하면 언제든지 도와줄 수 있다고도 했지만 나는 그 남자와 23년째 살고 있는 중이다. 참으로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새로운 곳에 적응할때 쯤 어김없이 남편의 이직이 있었고 그 뒤로도 우리의 무모한 이사는 한동안 이어졌지만 그해 겨울 그 단칸방에서 봤던 '겨울연가'나 '해피투게더'는 아직도 기억 속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나를 진심으로 돕고 싶어 했던 그 아리따운 여인이 있는 횟집식구들.... 그들과 함께 했던 몇 개월의 시간은 아직도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이사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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