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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복 Mar 03. 2023

엄마...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전화벨소리가 울려서 받으려고 보니 엄마다.

받을까 말까 하는 사이에 벨소리는 끊겼다.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나는 몇 달째 하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 뒤늦게 사춘기가 온 건지 아니면 갱년기가 오려는 건지 혼란스럽다.


싫은걸 더 이상 억지로 하고 싶지 않아서 대책 없이 시작한 행동이 그 끝을 알 수 없어서 나 또한 괴롭다. 어디서 멈춰야 할지도 모르겠고 예전으로 돌아갈 자신은 더더욱 없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엄마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꺼내보려 한다. 수십 년간 한 번도 엄마를 미워한 적도 원망한 적도 없지만 뒤늦게 찾아온 엄마에 대한 알 수 없는 감정의 정체가 미치게 궁금하다.


도대체 왜 나는 이제 와서... 새삼스레...


엄마와의 연락을 거부하는 걸까...




엄마랑 함께 산 10년이 채 안 되는 시간들을 아무리 이 잡듯이 샅샅이 뒤져봐도 행복하고 즐거운 기억은 거의 없다.



 기억의 대부분은  엄마에게 쫓기는 장면들이다.

그날도 나는 엄마에게 쫓기고 있었다.

잡히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내달렸다. 도대체 왜 쫓기는지 알지도 못한 채 말이다.


달리고 달리다 나는 할머니집까지 달려가게 되었고 텃밭에서 뭔가를 심고 있던 작은 엄마는 그런 나를 얼떨떨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집안으로 뛰여 들어갔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구석진 작은 방으로 들어가 잽싸게 문을 닫고 문고리를 있는 힘껏 잡고 늘어졌다. 하필 그 방은 잠금장치가 없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밖의 동정을 살폈다. 드디어 화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날 못 봤냐고 물었고 작은 엄마는 곧이곧대로 방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뒷이어 엄마의 거친 인기척과 함께 방문이 마구 열리려 하고 있었다. 죽을힘을 다해 버텨보지만 고작 대여섯 살 밖에 안된 아이가 화난 헐크 같은 엄마를 감당할 재주는 없었다. 문이 열리고 무지막지한 매질이 시작되었다. 한바탕 분풀이가 끝나고 나는 엄마에게 질질 끌려갔다.


눈물콧물 범벅인 채로 그렇게 집으로 끌려가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자고 일어나 보니 머리맡엔 예쁜 샌들이 놓여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한바탕 맞은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샌들은 내 품에 꼭 안겨있었다. 엄마는 조금 미안한 표정을 지었고 그걸 바라보며 잠시 편안함을 느꼈다. 폭풍우가 한바탕 휘몰아친 뒤에는 고즈넉한 평화가 찾아왔다.


...


뒷날 할머니가 작은 엄마를 나무라는 소리를 들었다. 딱 보면 무슨 상황인지 감이 안 오냐고.. 애 좀 숨겨주지 그걸 고스란히 당하게 두었냐고.




비슷한 일은 또 있었다.


그날도 역시 나는 엄마에게 쫓기고 있었다.

아마 그날은 집 열쇠를 어버린 날이 아니었나 싶다.

쫓기고 쫓기다 어느 좁은 골목길이 나타났고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길로 들어섰다.

엄마는 뒤에서 바짝 쫓아오고 나는 미친 듯이 내달리고 있던 찰나 눈앞에 믿지 못할 상황이 펼쳐졌다. 커다란 황소 한 마리가 떡 하니 골목 끝에 서있었다. 천천히 골목 안으로 들어서더니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소 한 마리로 꽉 찬 골목은 조금의 틈도 없어 보였다.


눈앞의 충격적인 사실에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뒤돌아서면 엄마에게 당할게 뻔하고 앞으로 가기엔 괴물 같은 황소에게 밟힐 수도 있다. 진퇴양난이 따로 없었다.

궁지에 몰려 우왕좌왕하던 나는 거기에서 기억이 끊겼다. 그 뒤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날 대한 기억이 통째로 없다. 너무 공포스러운 나머지 스스로 기억을 삭제한 걸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엄마말로는 나는 참 순한 아이 었다고 한다. 그런 순한 아이가 어떤 일로 그리 화를 돋웠는지 몰라도 나는 매번 생명의 위협 비슷한 걸 느꼈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개미조차 무서워하던 7살 꼬맹이가 어떻게 한밤중에 남의 집 문을 노크해서 재워달라고 할 수 있었을까 싶다.

(이 이야기는 '나의 첫 외박'이란 제목으로 브런치에 첫 글로 쓴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yanji7843/4



엄마와의 어정쩡하고 불편한 상황이 너무 싫다. 내가 자초한 거라 누굴 탓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또다시 내 감정을 무시한 채 무턱대고 엄마에게 맞추며 살고 싶지 않다. 엄마에 대해 쓰는 건 내게 찾아온 이 낯선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함이다.  엄마를 진정으로 편하게 대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엄마  #기억 #관계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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