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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복 Mar 28. 2023

개명신청이 장난이니?

이제 그녀가 궁금하지 않다



어느 날, 그녀는 내게 개명 신청을 도와달라고 했다. 철학관에서 유료작명을 했다고 하면서.     


“개명은 왜? 이름 안 좋대?”     

“그런가 봐. 그리고 난 내 이름이 싫어.”     

“그래? 근데 개명 신청하는데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을까? 요즘은 인터넷으로도 접수할 수      

있는 것 같던데.”     

“아! 몰라. 난 공인인증서도 없고…. 자기 그런 거 잘하잖아.”     

뭘 잘한다는 건지 몰라도 막무가내로 도와 달라고 하는 그녀를 차마 거절할 수 없어서 시간 날 때 법원에 같이 가기로 했다. 그녀에게는 그동안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라고 했다.     

          

그 뒤 한동안 시간 낼 틈이 없이 바쁜 시간이 흘렀다.     

그런 내게 그녀는 아이처럼 보채기도 하고 가끔 빚쟁이처럼 재촉하기도 했다.     

'그렇게 급하면 스스로 알아서 하든가.'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을 꾸역꾸역 삼키며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참…. 서류준비는 다 한 거지?"   

"아니."     

"안 했어? 언제 하려고?"  

언성이 올라가려고 했다.     

"나도 모른다고... 자기가 도와주기로 했잖아?"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개명신청에 필요한 서류와 사유신청서 서식, 사유서 쓰는데 참고하라고 사유서 예문까지      

검색하고 정리해서 문자로 보내주었다. 그녀의 집에 프린트가 있으니 출력해서 작성하기만 하     

면 될 터였다.               




바빴던 일이 웬만큼 마무리되고 나서야 나는 간신히 시간을 낼 수 있었다.     

12월의 어느 날, 그녀와 나는 개명 신청하러 법원에 가기 위해 함께 택시를 탔다.     

택시 안에서 그녀는 한껏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나 아무것도 준비 안 했다!”     

“뭐?”     

그러고 보니 정말 가방도 들지 않은 채 그녀는 빈손이었다.     

"어떡하려고?? 서류 준비하라고 내가 문자로 자세히 알려줬잖아?"     

"법원 가면 거기서도 서류 뗄 수 있을 거야."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법원에 도착해서 문의하니 법원 내에서는 서류를 뗄 수 없고 근처 주민센터에서 발급받아야      

한다고 했다.  말없이 그녀 뒤를 따라 근처 동사무소로 향했다. 법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추운 날씨와 서류 한 장 준비 안 한 그녀에 대한 미움으로 화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참을 기다려 서류를 발급받아서 다시 법원으로 갔다.     


잠깐의 대기 끝에 개명허가 신청서를 받아 들고 그녀가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서류를 내 앞으로 쓱 내밀었다.     

"왜?"     

"자기가 써줘."     

"뭐? 그걸 내가 어떻게 써줘? 본인이 써야지."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고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그녀와 실갱이질했다.     

"나 글씨가 잘 안 보여서 못써. 자기가 그냥 좀 써주라 얼른. 응?"     

그래…. 눈이 잘 안 보인다니까! 체념하고 허가신청서 첫 장을 채웠다.     

다음 장은 개명신청에 대한 사유서였다.

나는 그녀에게 눈빛으로 물었다.     

"사유서 미리 써왔지? 줘봐."     

울상을 지으며 그녀가 말했다.     

"그냥 자기가 알아서 대충 써줘. 나 주민센터에 발급받아야 할 서류가 더 있어서 다녀올 테니     

까 그동안 쓰고 있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는 줄행랑을 치듯 사라졌다. 하!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신 청 이 유! 네 글자를 뚫어지게 노려봤다.     

한참을 노려보다 하얀 종이 위에 치밀어 오르는 화를 꾹꾹 눌러 채웠다.      

뭐라고 썼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드디어 서류접수가 끝나고 법원 문을 나서며 그녀는 홀가분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 이제 다 끝났네! 뭐 맛있는 거 먹을래? “     

사람이 꼴 뵈기 싫을 수도 있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표정 관리가 안된 채 그녀를 앞질러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택시 타고 가자!"     

그녀는 지나가는 택시를 불러 세웠다.     

택시를 타고 가는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할 때쯤 그녀가 물었다.     

"집에 그냥 들어갈 거야?"     

"응."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나는 며칠 동안 그녀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그날 그녀가 했던      

말과 행동과 태도에 견딜 수 없이 화가 났다. 그렇게 화났음에도 말 한마디 못한 나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아 속이 상했다.        

       




얼마 후 그녀는 법원으로부터 개명허가를 받았다.      

덕분에 새 이름으로 새 출발을 할 수 있게 되었다며 고맙다고 호들갑스럽게 얘기했다.     

그러나 1개월 이내에 해야 하는 개명신고를 그녀는 하지 않았다.     

"과태료 내면 된대. "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얘기했다.     

아직도 그녀는 개명하지 않았다.        

   






#그녀 #개명신청 #그녀의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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