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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복 Mar 29. 2023

그날 토스트는 맛있었다

내 기분과는 상관없이...


전자책을 쓰느라 컴퓨터 앞에서 꼼짝 않고 있은 지 며칠째다.

열린 문틈 사이로 얼굴만 빼꼼히 내민 채 큰애가 조심스레 묻는다.

“엄마, 밥 언제 먹어요?”

“어? 벌써 배고파? 몇 신데?”

“1시 40분요.”

아침 먹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점심이라니…. 언뜻 머리를 굴려봐도 뚝딱 차려낼 만한 게 없다. 요 며칠 장을 제대로 보질 않았으니.

“너희들 오랜만에 토스트 먹을래?”

“네! 좋아요.”

거실에 있던 작은 아이까지 합세하여 두 녀석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그래. 오늘 점심은 토스트로 때워보자.”

배달 앱을 켜고 녀석들의 입맛에 맞는 메뉴를 골라 주문을 넣고 후딱 결제했다.

“30분 후 도착이래. 얘들아!”          



하던 작업을 마저 하기 위해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나 이번엔 둘째가 방문을 열었다.

“엄마, 토스트 언제 와? 배고파 죽겠는데.”

“올 때 되지 않았을까? 빙판길이라 좀 늦어지려나…?”

앱에 접속했더니 아닌 게 아니라 배달지연으로 떠 있었다. 배달 예정시간보다 10분이 지나있었다. 아이에게 우유 한잔 데워주며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했다.


잠시 후, 문자 한 통이 들어왔다. 문밖에 음식을 놓고 간다는 배달기사의 문자였다.     


“아들, 문 앞에 토스트 좀!”


컴퓨터 앞에 앉은 채 큰애한테 소리 질렀다. 대답과 함께 빛의 속도로 달려가는 아들의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바로 현관문이 열렸다가 다시 닫혔다.

“엄마, 밖에 아무것도 없는데요. 설마….”

방문을 열어젖힌 큰애와 눈이 딱 마주쳤다.

‘아?....’

휴대폰을 눌러 재빨리 배달 앱을 켰다.

이런 일이....

앱의 화면에 도착했다는 표시 옆으로 상세 주소에는 다른 주소가 쓰여있었다.

“또 외삼촌네로 배달시킨 거예요?”

아들의 실망스러운 목소리가 귀에 꽂힌다.       

   


미치겠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배달 앱 사용이 미숙한 친정엄마의 부탁으로 언젠가 음식을 배달시켜 드린 적이 있다. 그때 추가된 또 하나의 주소가 자꾸 나를 헷갈리게 한다.

어떡해야 할까….


보통 때는 동생한테 전화해서 밖에 음식이 배달되어 있으니 엄마랑 맛있게 먹으라고 하고 다시 똑같은 메뉴를 주문해서 집으로 배달시키곤 했었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기다리다 지쳐서 짜증 부리고…. 그게 벌써 몇 번째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에 정신이 든 나는 주섬주섬 옷을 껴입으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엄마 외삼촌네 후딱 다녀올 테니 조금만 기다려.”  

        



밖에 나와보니 아파트 주변 제설작업이 하나도 안되어있어서 온통 빙판길인 데다 매서운 한파까지 기세등등 위엄을 떨치고 있었다.

외투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쓴 채 어기적거리며 동생네 집으로 향했다. 같은 아파트지만 대단지인 데다 동생네 집은 정문 쪽에, 우리 집은 후문 쪽에 위치해 있어서 원래도 가깝지 않던 거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멀고 험하게 느껴진다. 외투 주머니 속에 깊숙이 손을 찔러 넣고 미끄러워 넘어질세라 아슬아슬 걸어가는 기분은 흡사 시베리아 벌판을 걷는듯했다. 10분은 족히 걸린 듯했다.



집 앞에 도착해 보니 토스트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동생네 현관문을 잠시 바라보다 바닥에 놓인 토스트를 냉큼 챙겨서 자리를 떴다. 꼭 뒤에서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듯이. 미친 듯이 부는 바람에 손에 들린 토스트 봉지의 부스럭대는 소리가 청승맞게 들려온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에게 토스트를 건넸다.

배가 몹시 고팠던 녀석들을 허겁지겁 잘도 먹는다.

“전자레인지에 따뜻하게 데워줄 걸 그랬나…?”

“아니. 그냥 먹는 게 더 맛있어.”

중얼거리는 혼잣말을 용케 알아듣고 둘째가 대답을 했다.


식은 토스트라도 맛있게 먹어줘서 다행이다.

덕분에 내가 조금이라도 덜 한심해 보이는 것 같아서 위안이 된다.

시뻘겋게 언 손으로 식어 빠진 토스트를 집어 나도 입안에 욱여넣었다.

토스트는 생각보다 맛있었다.



#토스트 #그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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