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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복 Apr 09. 2023

어느 완벽한 하루

행복..




늦잠 자고 일어난 둘째가 김밥타령을 한다.

어제 김밥재료 사다 놓은걸 마치 알고 있는 것처럼.


귀신같은 녀석...



조금 뒤에 코칭수업이 예정되어 있던 터라 부지런히 재료 준비를 했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손놀림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녀석이 화장실을 들어가면서 겨우 한다는 소리가


"아직도 김밥 못 싼 거야??" 그런다.


바쁘게 움직이던 손이 딱 멈췄다.


"너 김밥에 들어가는 재료가 몇 가지인 줄이나 알아?"


닫힌 화장실 문에 대고 버럭 했다.


"김밥이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줄 알지!"


녀석도 지지 않고 화장실에서 뭐라고 쫑알거린다.



잠시뒤 화장실에서 나온 녀석이 날 지나치며 말했다.


"엄마, 나 친구랑 약속 있어서 지금 나갈 거야."


"뭐? 누구 때문에 지금 김밥 싸고 있는데?"


저절로 언성이 높아졌다.


"시간 많이 걸리잖아..."


"아냐. 계란 부치고 당근만 볶으면 되니까 먹고 나가. 알았지?"


녀석에게서 기어이 대답을 듣고 나서야 나는 서둘러 하던걸 계속했다. 어느새 외출 준비를 끝낸 아이는 부산스럽게 주방과 거실을 오락가락하며 나를 감시하듯 지켜보고 있었다.



김밥재료 준비를 이렇게 빨리 끝낸 적이 있었나 싶다.

초스피드로 세팅을 하고 김밥 한 줄을 딱 말았는데 지키고 서있던 녀석이 독수리처럼 그걸 채가더니 현관으로 내달린다.


"엄마... 나 놀다 올게."


운동화 속에 발만 겨우 집어넣은 채 썰지도 않은 뚱땡이 김밥을 입에 욱여넣으며 아이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 뒤를 이어 현관문이 요란하게 탕하고 닫힌다.


"아이고... 내가 못 산다!"


우당탕탕 녀석이 빠져나간 집은 금세 고요해진다.


그제야 가지런히 놓여있는 김밥재료가 눈에 들어왔다. 집안 가득 따스한 햇살이 비추고 갑자기 한없이 여유로움을 느낀 나는 비닐장갑을 벗고 스피커를 연결해 음악을 틀었다.

지금 딱 어울리는 음악이 집안 가득 메우고 나는 다시 비닐장갑을 끼고 김밥을 싸기 시작했다.


음악소리에 큰애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엄마, 근데 음악은 왜 지민이가 없을 때만 틀어요?"


"어? 그랬었나? "


고개를 갸웃거리는 내게 큰애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는 역시 나랑 있는걸 더 좋아한다니까. 꼭 그 녀석이 나간 후에 음악을 틀잖아요."


낄낄대며 아들은 방으로 들어갔다.


덩달아 나도 낄낄대며 웃어본다.


행복하다. 지금 이 모든 것이.


단무지와 우엉, 시금치와 당근, 맛살과 햄, 계란과 치즈처럼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김밥이 되듯이 내 행복도 그런 것이 아닐까.




#행복 #완벽한하루 #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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