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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복 Apr 06. 2023

마흔이 넘어서야 알았다

꽃이 예쁘다는 걸


"돈 아깝게 뭐 하러 꽃을 사? 금방 시들어 버리는걸…. 이젠 이런 건 안 줘도 돼. “     


결혼하고 첫 생일이었던 것 같다.

퇴근하고 온 남편 손에는 연애 때와 마찬가지로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남편에게 그걸 건네받으며 기껏 내뱉은 소리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참 위험한 발언이었다. 어떻게 저런 말을 했을까 싶지만 굳이 변명하자면 솔직히 저 때만 해도 나는 꽃을 좋아하지 않았다. 빨강, 노랑, 연분홍, 진분홍의 선명하고 쨍한 그것들이 싫었다.

꽃은 촌스럽고 인위적이고 왠지 가식적이라는 해괴한 생각 때문에 거기에 돈을 쓰고 싶지 않았는데 연애 때 차마 못 했던 말을 결혼하고 나서야 한 셈이다. 남편 표정이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저런 말을 듣고 기분 좋을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다만 크게 내색하지 않은 덕분에 별일 없이 넘어간 거라 짐작될 뿐이다.


꽃이 이러할진대 그 외 것은 말해 무엇하랴.

계절의 변화를 한낱 옷장 정리나 해야 하는 날이나, 오로지 내 비염을 자극하는 반갑지 않은 손님으로 치부하며 왜 계절이 네 개씩이나 되는지 투덜거리며 살았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바람 한 점에도 환호성을 지르는 시어머니 모습은 그런 나에게 낯선 풍경과도 같았다.


그렇게 화분 하나 제대로 못 키우는 삭막한 인간으로 수십 년을 살던 마흔 즈음의 어느 날, 문득 꽃 사진을 찍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것도 길가에 이름 모를 풀꽃을 말이다. 지나가는 동네 꼬마가 그랬다. "그거 잡초인데요."

'그래. 나도 오랫동안 잡초로 알고 살았는데 지금 보니 이렇게나 예쁜 꽃이었구나.'


낯선 내 모습이 싫지 않았다.

파란 하늘이 예뻐서 카메라에 담고 지는 꽃이 아쉬워 또 셔터를 눌렀다.

불편하고 좁아터진 집에서 탈출할 날만 손꼽느라 10년 가까이 살아온 집이 얼마나 멋진 풍경을 가졌는지도 그때 처음 알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풍광을 차례로 찍어보았다.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동안 나는 과연 어떤 걸 눈에 담고 살았던 걸까….





이제는 정말 별게 다 이쁘다.

돌멩이도 이쁘다며 주어 오는 우리 둘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지나가는 똥강아지도 이쁘고 뒤뚱거리는 살찐 고양이며 흐느적거리는 낙지와 주꾸미도 사랑스럽다.

그러니 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언제부턴가 나는 시어머니와 친정엄마 생신에 꽃 선물을 하기 시작했다. 꽃다발을 받고 행복해하는 두 분 모습에 나도 덩달아 행복했다.

이제는 나도 꽃 선물을 받고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남편은 아무 생각이 없는듯하다.

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그때 그 일 이후로 남편은 단 한 번도 나에게 꽃을 선물하지 않았다. 서운해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 발등 내가 찍었으니 뭐 어쩌겠는가.




아쉬운 대로 내일은 친구랑 꽃구경이나 가야겠다.

흐드러진 벚꽃 향기에 실컷 취해봐야겠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면 길가 작은 꽃집에 들러 소담하게 포장된 작은 꽃다발 하나 사서 나에게 선물해야지.

그걸 보고 눈치챈 남편이 올해 내 생일엔 꽃을 선물해 주면 참 좋겠다.

꿈이 너무 야무진가?

살다 보니 사람은 또 이렇게 변하기도 한다는 걸 새삼 느낀다.      




#마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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