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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복 May 07. 2023

기억조각 2

뿌연 김이 서린 여탕 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식혜 한잔 사들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탕 속에 들어가 앉으면 좋을 것 같다. 오랜만에 때도 밀고 마사지도 받아야겠다. 얼마나 개운할까...


그러나 몸은 움직여지지 않는다. 아무데나  쓰러져 자고 싶다.

찜질복으로 갈아입고 여탕 입구옆 나무계단을 따라 수면실로 향했다. 어둑어둑한 공간에 군데군데 누워있는 사람들의 형체가 보였다. 얇은 매트가 깔아져 있는 빈 공간을 찾아 대충 몸을 뉘었다.  일단 자자! 한숨 자고 일어나서 생각하자.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얼마나 잤을까... 으슬으슬 추운 느낌이 들어 저절로 눈이 떠졌다. 담요 하나 대여할걸 그랬나 보다. 몸을 옹송거린 채 다시 잠을 청해 보지만 이미 잠은 깨버렸다. 몇 시나 됐을까?

핸드폰이 없으니 답답하다. 결국 어슬렁거리며 수면실을 나와 시간을 확인했다. 열 시가 조금 넘었다. 여탕은 아까보다 한산했다.


하릴없이 찜질방으로 향했다. 한산한 여탕과는 달리 넓은 찜질방은 아직 시끌시끌했다. 티브이 보는 사람들, 누워서 만화책 보는 사람, 게임하는 사람, 군계란에 식혜 먹으며 수다 떠는 사람들... 나도 거기에 끼고 싶어 커피와 계란을 주문해서 한쪽 구석에 자잡고 앉았다.

계란껍데기를 까면서 뒤늦게 허기가 느껴져 얼른 한 입 베어 물었다. 아무 맛이 느껴지지 않아 남은 반쪽 계란도 마저 입에 넣우물거려 보지만 별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시원한 냉커피 한 모금 들이켜니 그나마 좀 살 것 같다.


나쁘지 않아. 아주 좋아!

내일은 뭐 할까? 미용실 갈까? 예쁘게 머리를 하고 오랜만에 쇼핑도 해야겠다. 극장에 가서 영화도 보고 맛있는 밥도 사 먹고 커피숍에 가서 느긋하게 커피도 마시고... 서점도 가고... 할 게 너무 많다. 사람답게 살아야지 이제는. 훨훨 자유롭게 날아야지.

우울하게 살지 말자. 다시 돌아갈 일은 없어. 나는 이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거야!

큰 통에 담긴 냉커피를 쪽쪽 빨아 마시며 다짐했다. 나에게 곧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것 같았다.





밤은 깊어가고 사람들은 하나둘 잠에 빠져들고 소란하던 찜질방의 소음도 하나 둘 줄어들었다.

모든 게 더없이 평화로운데

엎치락 덮치락 잠이 들지 못한 나만 불안하다. 아이들 생각에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울며 매달리던 두 녀석 얼굴이 떠오르고 과연  아이들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나에게 묻기 시작한다. 살아갈 수 있다고 내 마음이 답하는 것 같다.

그래? 행복하게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다시 한번 질문이 던져졌고 나는 쉽게 답을 못한다. 살아갈 수는 있을 것 같은데 그 삶은 장담을 못하겠다. 아마도... 지옥이 아닐까 싶다.


눈물이 쏟아졌다. 내 인생이 더는 나만의 인생이 아님을,  나 혼자 독하게 맘먹는다고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음을 뼛속깊이 느꼈다.

가슴이 저리듯 아파와 숨죽여 울고 또 울었다.






#가출 #찜질방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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