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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복 May 08. 2023

기억조각 3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다. 선택의 여지란 애초부터 나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도 모르고 살았다.

나는 맘만 먹으면 뭐든 가능할 거라 믿었다.

호기롭게 집을 뛰쳐나왔지만 기껏 온 게 찜질방이고 하루도 안돼 마음은 무너져 죽을 것 같은 고통에 쩔쩔매는 꼴이라니...

불쌍하고 한심하고 억울해서 미칠 것 같았다.



이른 아침 찜질방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식사를 하려는 사람들로 찜질방 내 식당이 분주해지며 그릇 부딪치는 소리, 메뉴 주문하는 소리로 시끄럽다. 소음을 들으며 자리에 누운 채 꼼짝을 안 했다. 이대로 깊숙이 땅속으로 잦아들고 싶다. 소란한 아침이 가고 있었다.

 

오전 내내 바닥에 엎드린 채 오고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허기를 달랬다. 미역국에 밥 말아먹을까? 아님 라면을 먹을까... 그러다 얕은 잠이 들었다 깼다를 반복하 아이들은 밥을 먹었을까 잠은 잤을까... 나는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깊은 나락으로 끝없이 추락했다.

집에 가야지 하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곧바로 다시 드러누웠다. 


두 눈 질끈 감고 딱 1년만 버텨볼까? 미친 듯이 일해서 돈 모아서 아이들을 데려오면 될 것도 같은데.. 그런데 말이다... 그 시간을 버틸 자신이 없다. 그전에 아마 나는 죽어버리지 않을까 싶다. 생각만 해도 살점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데.


자리에서 일어나 매점을 향했다. 밤새 몸이 너덜너덜해진 느낌이다. 컵라면 하나 사서 뜨거운 물을 부어놓고 하염없이 기다렸다. 제정신이 돌아올 때까지. 퉁퉁 불은 면을 젓가락으로 저어 입으로 가져갔다. 첫째 임신 때 극심한 입덧으로 먹었던 그때의 컵라면 냄새가 났다. 욱--헛구역질이 몇 번 나는듯하더니 이내 멈춘다.

그러나 냄새는 지워지지 않고 입덧하는 기분으로 꾸역꾸역 국물까지 싹 비웠다.

뱃속이 뭔가로 채워지니 조금 살 것 같다. 무엇을 먹었든 어떤 기분으로 먹었든 간에.


찜질방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하룻밤 나를 품어주었던 공간이 아프게 다가온다... 울컥 눈물이 쏟아진다. 이제 더는 여기에 머무르면 안 될 것 같아 서둘러 찜질방을 나섰다. 여탕으로 내려가 간단히 씻고 나와 입고 왔던 옷으로 갈아입었다.

부랴부랴 사우나 문을 나서다 말고 시계를 쳐다봤다.

겨우 2시밖에 안 됐다. 아주 오랫동안 머문 것 같은데  고작 오후 2시라니 순간 당황했다. 그렇다고 다시 찜질방으로 들어가기도 애매해 결국 밖으로 나왔다.

밝은 빛이 쏟아지는 한낮이었다. 오랜만에 세상밖으로 나온 사람처럼 한참을 그렇게 서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까?

발길이 닿는 대로 정처 없이 헤매기 시작했다. 걷고 또 걸었다. 어디로 가는지 얼마나 걸었는지 모른다. 눈에 익은 풍경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에야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나는 어제의 그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해는 이제 막 기울기 시작했는데.


다시는 오르내릴 일 없을 거라 했던 어젯밤 그 계단 앞에 서서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천천히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20시간의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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