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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복 May 09. 2023

어버이날 며느리 역할은 끝났다

역시 늘그막에 자식은 많고 볼 일이다.

한 명쯤은 꼴통을 부리고 한 명쯤 사정이 생겨서 못 온다 쳐도 행사를 챙길 두세 명의 자식은 늘 있다는 것.. 굉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루종일 시어머니 모시고 동서랑 시누랑 하하 호호 웃으며 즐겁고 약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왔다. 밤늦은 시간 지친 몸뚱이를 끌고 이불 속에 들어가 누웠는데 기분이 왜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낮동안 약간의 가식 섞인 내 나름의 효도?를  떠올린다. 우리 엄마에게는 그런 가식 섞인 모습을 한 며느리도 딸도 없다는 게  슬프도록 아프다.




아이들을 실내놀이터에 들여보내고 여자 넷이 긴 시간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다.

나 준다고 깨강정을 잔뜩  해오신 시어머니는 그걸 조금 꺼내어 맛보라고 한다.

"어머! 이거 어릴 때 먹던 맛인데요."

동서가 반색을 하자 시어머니는 너도 만들어줄까? 물어보신다.

양도 많아서 덜어줄 법도 한데 너도 해줄까? 그러면서 이거는 니 거 아니야 하며 은근 눈치를 주신다. 꽁꽁 챙겨서 주는 강정을 그대로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와 냉동실에 넣었다.



"너희 집 가서 살아도 될까?"

 갑자기 환청처럼 시어머니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 하하하!" 당황해서 어색하게 웃는 내게

"너 남편이 들어와 살라던데."

그랬다 시어머니는.


헛! 2년 전에 아파트 2개가 당됐는데 곧 입주를 앞두고 있다. 젠가 장난식으로 남편에게 당신 어머니랑 울 엄마 같이 저 집에서  살게 할까? 그랬던 적이 있다.

사돈지간에 같이 한집에 사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라 여겼던 내가 농담으로 한 얘기였는데... 농담이 지나쳤나 보다. 귀신 듣는데 떡소리 한 격이 됐다. 우리끼리 한 농담은 절대 다른 사람한테 얘기하면 안 된다고 일러두기까지 했건만.ㅠㅠ


"어 그래요? 그럼 저희 친정엄마랑 같이 사실래요?" 속에도 없는 말을 하며

나는 남편의 그 얘기가 왜 나왔는지 친절하게 알려드렸다.


하하 호호 웃으며 넘기더니 잠시뒤 또 묻는다.


"나 진짜 그 집 들어가 살아도 돼?"


이건 설마 진심?


"살아도 되지 엄마.. 한 달에 130만 원 정도 내면 가능할걸." 시누이의 멘트에  터져 한바탕 웃었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하... 그렇은행 이자만 그 정도 나오겠 혼자 속으로 생각하며 횡설수설 뭐라 떠들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아들어머님을 챙기고 싶어 하듯 며느리는 친정엄마를 챙기고 싶어 한다는 내 뜻이 대충이라도 전달됐으리라 믿는다.




함께 식사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용돈봉투도 챙겨드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나름 애썼다.

늦게 퇴근한 남편은  바리바리 회까지 챙겨서 어머님한테 안겨드렸다.

평소에 조금 무심하든 서운하든.. 어쨌든 그냥 넘길 수 없는 날, 자식들 속에서 환하게 웃는 시어머니 얼굴이 오늘따라 행복해 보였다.


....


시댁행사는 끝났고 남편은 역시나 말이 없다.

처가에 대한 존재감이 언제나 생길지 궁금하다.

결국 옆구리 찔러 절 받기 식으로 겨우 마무리 됐지만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

지금까지 기분 좋게 해 왔던 며느리 역할이 나조차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 생각을 바꿀 때가 온 것 같다.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다는 걸 이해하기 쉽게 행동으로 보여주어야겠다.

딱 남편만큼만 하고 살아야지.




기분이 개떡 같은 날의 횡설수설...


#어버이날 #엄마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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