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말 없이

기차에서의 하루

by 조완호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증오의 대상이 되고, 어느 정치인의 허언에는 사람들이 웃고 넘어가던 그런 비루한 시절에, 어느 남자가 길을 떠나고 있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오로지 알 수 있는 것이라곤 뿔테 금속 안경에 검은 머리, 그리고 추운 날씨에 걸쳐 입은 외투가 끝이었다. 이런 이른 아침에 기차를 탄다는 건, 아마 그의 호주머니 사정이 그렇게 좋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는 초점없는 눈으로 반대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지금 살아있지 않는 것처럼.


어느 여자는 오랜만에 기차를 탔다. 그녀의 호주머니에 있는 돈은 어제 그녀의 어머니에게서 마지막으로 받은 돈이 될 수 있다. 오늘 그녀가 갈 곳은 정해져 있지 않다. 사실 부모님에게는 취직했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그녀는 10개월째 직장이 없다. 그녀는 오늘 자신의 생애 마지막을 기념하기 위해 기차를 탔다.


여자는 남자를 응시한다. 옆면으로만 보이는 남자는 그렇게 매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내 남자가 시계를 자주 쳐다보는 점, 그리고 회사 서류로 보이는 종이를 만지작거리는 걸 보면서 회사원임을 알게 된다.


“저런 놈도 직업이 있는데……”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혼잣말로 웅얼거렸다. 이내 그런 말을 뱉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부끄럽고 민망해 입을 막고 남자의 기색을 살핀다.


남자는 갑자기 놀라는 여자의 모습에 여자 쪽을 응시한다. 그녀의 모습은 마치 죽어가는 병아리처럼 초췌하고 힘이 없어 보인다. 나보다 더 심한 몰골은 오랜만에 보는군. 남자는 속으로 여자가 마약을 했거나 프로메테우스의 환생이 아닐까 추측을 했다. 까마귀한테 간이 쪼이던 프로메테우스도 저 정도는 아니었겠지. 남자는 이내 생각을 멈췄다. 어제 저녁까지 집에서 했던 잔업이 그에게 더는 생각의 자유를 주지 않았다. 그리고 남자는 다시 고개를 돌리려는 도중에…


끼익!!! 열차의 머리에서 갑자기 울려 퍼지는 굉음. 열차가 심하게 흔들린다. 마치 세계가 뒤틀리듯 열차가 술에 취해 이리저리 갈지자를 그리다 이내 멈추었다. 남자와 여자는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려는 듯 세상을 향해 큰 원을 그리며 힘껏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안내 방송, 열차 천장에서 전자음이 반쯤 섞인 소리가 약간 작게 새어 나왔다.


“신사 숙녀 여러분. 우리 열차, 선로의 장애물 충돌로 인해 잠시 소요가 있었습니다. 현재 장애물 제거 작업으로 운행 정지할 예정이오니, 승객분들께서는 잠시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남자와 여자는 안내 방송에 잠시 숨을 돌렸지만 이내 두 사람이 같은 자리에 앉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남자는 화들짝 놀라 여자의 무릎에서 일어나 자기 자리에 앉는다. 둘은 서로를 응시한다. 그리고 여자가 말을 건다.


“괜찮아요?”


남자는 엉덩이와 무릎을 털며 겸연쩍은 듯 말한다.


“괜찮습니다.”


남자는 그러다 자신의 가방에서 서류가 일부 떨어져 나갔음을 확인하고 서둘러 주변을 확인하며 서류를 줍는다. 여자는 잠시 남자를 쳐다보다 일어나 자신도 함께 서류를 주워준다. 30분쯤 지났을까, 열차는 다시 운행을 시작한다.


어느 역, 기차에서 사람들이 한꺼번에 내린다. 아마 조금 전 사고 때문에 열차가 운행을 하지 않는 모양이다. 내리는 사람 중 몇몇의 소리가 들린다.


“아까 들었어? 열차가 멈춘 이유가 사람이 끼어 있었다는구만.”

“자살이겠지? 어쩌다 그렇게 죽었을까.”


열차에서 남자와 여자는 손을 잡고 내려온다. 꼭 잡은 손이 무언가 신기한 힘이 느껴진다. 방금 1시간의 열차 사고로 누군가는 죽었고, 누군가는 살게 되었다. 인생이 아이러니하다면 바로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닐까.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세상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좋아, 오늘 이야기도 흥미로웠어. 하지만 열차 사고는 조금씩 걱정이 되었다. 이 친구가 달리지 못한다면 나도 이런 구경은 더 하지 못하겠지. 그건 그렇고, 열차 광고지를 담당하던 친구가 보이질 않던데. 혹시 회사를 그만둔 걸까. 그 녀석이 나를 버려줘야 이 지겨운 생활도 끝이 날 텐데.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