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 번 산 고양이」 사노 요코 글. 그림
아이를 낳고 일을 그만두었다. 야근이 잦은 회사를 다니기에는 아이도 나도 감수해야 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여기저기 맡기면서 미안해하고 눈치 보며 키우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10년을 경은엄마로, 경은어머니로, 경은에미로 분주하게 살았다. 첫째가 유치원 갈 때 즈음 둘째가 태어났기에 더욱 그랬다.
남편은 외벌이가 힘들다며 스트레스 해소가 필요하다고 했다. 주말 하루는 친구들과 당구를 치고, 스크린 골프 치러 다니며 시간을 보냈고, 나머지 하루는 온종일 누워 지냈다. 가족을 위해 좀처럼 시간을 내지 않는 남편에게 불만이 컸지만, 아이들 앞에서 부모가 다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혼자 벌어 가족을 책임지는 남편의 어깨가 무거울 법도 했으니까. 어쩔 수 없이 자유 부인이 아닌 '자유 남편'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동네 도서관 그림책 책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첫째가 초등학교 입학한 해에 둘째도 유치원에 보내게 되니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돈 드는 일도 아니고, 얇은 책만 읽어가면 되니 시작하기에 만만했다. 책모임에는 한 가지 의무가 있었는데, 회원 10여 명이 일주일에 한 번씩 차례로 그 주에 읽을 책에 대한 발제글을 써야 했다. 그림책에서 A4 한 장만큼의 글을 뽑아내는 것은 상당히 까다로운 일이었다. 일주일 꼬박 채워 글 한 편 겨우 완성했다. 사노 요코의 그림책『백만 번 산 고양이』도 발제글로 만난 책들 중 하나였다.
책표지 가득 얼룩 고양이 하나가 서 있다. 그는 자그마치 백만 번이나 산 고양이다. 그를 가졌던 백만 명의 사람들이 모두 그를 아꼈고, 그가 죽었을 때에는 소리 내어 울며 슬퍼했다. 하지만 고양이는 그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죽는 것도 두렵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처음으로 어느 누구의 고양이가 아닌 자신만의 고양이로 태어난다. 도둑고양이로 태어난 것이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고양이의 삶이 시작되었다.
주체적인 삶, 지난 몇 년간 굉장히 신경 쓰고 있는 말이었다. 전업맘으로 해가 지날수록 불안과 두려움이 커져만 갔다. 내 중심에는 내가 없고, 가족만 존재하는 삶을 지속하다 보니 언젠가는 투명인간이 되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말이다. 엄마, 아내, 며느리, 자식으로서 역할에 몰두한 나머지 진짜 나는 없어지고 역할만 남게 될 것 같아 두려웠다. 아이들이 내 품을 떠나고 나면, 속이 텅 빈 나는 무엇으로 채울까, 누가 보상해 줄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니 지나간 내 삶이 굉장히 억울했다. 가족을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했는데, 속이 텅 빈 껍데기만 남아 있을 미래라니.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진심으로 희생한 것이 아니라 가족을 통해 나를 증명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공부 잘하고, 무엇이든 잘하는 아이들로 키우면 나는…, 회사에서 일 잘하고, 승진 잘하는 남편 만들면 나는…. 얀느가 아이도 잘 키우네, 내조도 잘하네. 이런 말을 듣고 싶어서 말이다. 마치 고양이가 임금님의 고양이었고, 뱃사공의 고양이었고, 서커스단장의 고양이었던 것처럼, 나는 공부 잘하는 아이의 엄마, 돈 잘 버는 사람의 아내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식구들을 숨 막히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주며 "왜 이렇게 혼자 못하냐"라고 잔소리하는 엄마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렇게 가족을 위해 애쓰는데 당신도 무언가 해야지!" 강요하는 아내였을지도 모르겠다.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에게 의무와 죄책감을 심어 놓은 엄마와 아내였는지도 모르겠다. 이쯤 되니 도둑고양이긴 하지만 당당하게 사는 멋진 얼룩무늬고양이가 부러워졌다. 나도 누군가의 무엇이 아니어도 스스로 당당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화책의 앞부분에서 누군가의 옆에서 조그맣게 등장하던 고양이는 뒷 부분에서 한 페이지를 장악하며 나타난다. 행동에 거리낄 것 없었진 그는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무척 사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특별한 하얀 고양이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고양이는 이제 자신보다 하얀 고양이와 그들의 새끼 고양이들을 더 아끼게 된다. 세월이 흘러 하얀 고양이가 죽던 날 고양이는 처음으로 운다. 밤낮이 몇 번이 바뀌도록 백만 번이나 울고는 하얀 고양이를 따라간다. 그리고는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
고양이는 왜 백만 번이나 다시 태어나야 했을까. 그리고 왜 마지막에는 다시 태어나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는 비로소 자신의 삶에 온전히 만족했기 때문이리라. 누군가의 고양이가 아닌, 스스로의 존재로 살아냈기에 더는 반복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나를 빛내줄 무언가를 얻기 위해 삶의 많은 부분을 애쓰며 살았다. 그러면서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희생이고 헌신을 하고 있다며 억울해했다. 결코 행복한 삶이 아니었다.
이 책을 처음 읽은 지 6년이 지났다. 떠밀리듯 부유하는 삶 속에 잠시 멈춰서 나는 무엇을 위한 삶을 살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그때의 다짐대로 스스로의 존재로 살아내려 애쓰고 있는 중이다. 때로는 도둑고양이의 삶처럼 터프하고 어수선할 때도 있지만 말이다. 「백만 번 산 고양이」가 알려준 삶의 태도처럼, 오늘이 죽은 어제가 되지 않도록 오늘이라는 시간을 사랑하며 충실히 살아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