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물기 가득 머금은 스펀지 인간이라도 된 것처럼 툭하면 눈물이 터질 때가 있었다. 사소한 자극에도 가슴이 아리면서 감정이 터져 나왔다. TV 볼 때 말고는 좀처럼 울지 않는 나인데 한 달 내내 울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아빠가 병원에 입원하던 시기였다. 식탁에서 일어나시다가 뒤로 넘어지신 것이 화근이었다. 내장 출혈이 생긴 줄도 모르고 며칠을 지내다가 검진차 갔던 병원에서 바로 입원해야 했다. 상황은 빠르게 악화되어 며칠 뒤 중환자실로 모시게 되었다.
좌식 생활이 불편한 부모님을 위해 몇 해전에 내가 사드린 식탁과 의자가 문제였다. 효도한다고 사드린 것이 화근이 될 줄이야. 죄책감과 빠르게 악화되는 아빠의 병세에 어쩔 줄 몰랐다. 친정에 자주 갈 수도 없었다. 병원의 짧은 면회를 위해 유치원,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데리고 멀리 떨어진 친정에 가서 살다 오기에도 애매했다. 슬프고, 후회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의 무력함에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그럼에도 일상은 이어져야 했다. 밝은 표정을 하고 학교와 유치원에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집에 오는 길에는 언제나처럼 도서관에 들렀다. 어느 날, 아이에게 읽어줄 책을 찾다가 눈길을 잡아끄는 그림책 하나를 발견했다. 나카가와 히로타카 글, 초 신타 그림의 『울었어』였다.
그림책 속 아이는 툭하면 운다. 넘어져서 울고, 부딪혀서 울고, 혼나서 운다. 헤어짐이 아쉬워서 울고, 반가워서 울기도 한다. 갓난아기는 말을 못 하니 불편함을 울음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여섯 살 주인공은 도대체 왜 매일매일 울까. 낯선 감정- 아픔, 분함, 슬픔, 기쁨-을 표현할 길이 없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은 무엇보다 강렬한 색감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다. 밝은 주황과 노랑이 눈길을 붙잡고, 초록과 파랑으로 명확한 대비를 보여준다. 그림은 아이가 그린 듯 투박하면서도, 감정 묘사는 섬세하다. 아이가 보는 세상의 모습이 '초 신타'의 그림세계와 같지 않을까? 그림은 삐뚤빼뚤하지만 모든 게 낯설고 신기한 세상, 자그마한 일에도 까르르 웃고, 우는 아이들의 세계 말이다.
어렸을 때에는 나도 울보였다고 한다. 대여섯 살 때 교회 유아원에 다녔는데 얼마 못 가 그만둬야 했다. 너무 자주 울고, 내가 울면 다른 아이들까지도 따라 울어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달래느라 하루가 다 갔다고 한다. 그 후로 운 기억이 거의 없다. 두 살 터울 언니랑 자주 싸웠는데 어찌나 약 오르게 하는지, 울면 지는 것 같아 꾹꾹 눌러 참았다. 눈물대신, 어떻게든 언니를 약 오르게 할 말을 찾느라 머리가 바빴다. 자주 울던 아이가 더는 안 울게 된 것은 마음이 조금 자라서일까, 울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서일까.
어른들은 왜 울지 않을까? 엄마가 텔레비전을 보면서 눈물을 닦는 건 딱 한 번 봤지만,
엄마는 손을 베었을 때도 울지 않았어. (그림책 중에서)
내가 열 살 때 엄마가 타지로 돈 벌러 떠나고 아빠가 엄마의 빈자리까지 채웠다. 가장으로서 아빠가 느꼈을 부담감이 컸을 것이다. 나는 그저 엄마가 없다는 서러움에, 삶의 불편함에 불평하기 바빴다. 어느 날, 아빠가 여섯 살짜리 동생을 붙잡고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무거운 삶 속에서 키워내야 할 막내를 보며 막막함을 느꼈을 것이다. "이제 어떻게 사니, 우리 모두 어떻게 사니." 약주를 하셨는지 벌건 얼굴로 울고 있는 아빠가 안쓰러웠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고, 힘세고, 무서운 어른이 아이처럼 울고 있다니.
그림책 속 아이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벅찬 상황과 감정을 울음으로 표현한다. 아이는 커가면서 여러 상황을 맞닥뜨리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울지 않고도 스스로 배워 나갈 것이다. 그렇게 어른이 되면 아이는 더 이상 울지 않게 될까? 그러나.. 울지 않는 어른이 있을까. 남 앞에서 우는 어른을 흔하게 볼 수 없을 뿐. 끊임없이 밀려드는 삶의 파도가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기에 어른들도 눈물이 필요하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엄마 이불 속에 들어갔을 때, 엄마 눈에서 눈물이 나왔어.
계속 흘러서 베개 위로 뚝 뚝 떨어졌어. (그림책 중에서)
"엄마, 우는 거야?"하고 물었더니, "응."하고 대답했어." (그림책 중에서)
그때의 아빠와 8년 전의 나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인생의 파도를 만났다. 우리는 각자 거대한 슬픔, 열패감, 두려움을 인정하고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눈물로 가득 채워 넣은 다음 다시 나갈 힘을 내었다. 한바탕 눈물이 난다는 것은 내 마음에 연료가 필요하다는 말이고, 곧 채워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인생의 파도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갈지, 연료만 채워 넣다가 심해로 빠질지는 그 순간을 통과해 본 사람만이 알지 않을까. 다시 한 걸음을 떼는 일은 결국 우리를 살게 한다.
아빠는 한 달을 병원에 계시다 집으로 오시고 일주일 후 돌아가셨다. 병원에서 어느 정도 회복해서 오셨기에 그리 일찍 돌아가실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한 달을 미리 울어서 그랬는지 장례식장에서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오랜 병환이 아니었고, 집으로 돌아와 식구들과 함께하는 마지막을 보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아이는 말 대신 울고, 어른은 말로 다할 수 없을 때 운다. 울음은 나이와 상관없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것을 이제 알겠다. 그 한 달간의 눈물은 아빠의 삶을 향한 나의 인사이자 애도였다. 그리고 다시 살아갈 나에게 건네는 위로였음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