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 우리들의 원시인 대모험

by 얀느

내 어릴 적 기억에는 유독 뜨거운 햇볕 아래서의 추억들이 많다. 현기증 날 것 같은 뜨거운 태양볕 아래 흙먼지 피어오르는 길 위에서, 아지랑이 이는 아스팔트 위에서, 뜨겁게 달궈진 냇가 혹은 바다의 뜨거운 바위 위에서 나는 부지런히 무언가를 관찰하고, 소리 지르고, 누군가와 걷거나 뛰었다. 수많은 추억들 중 유독 꽈랑꽈랑한 볕아래서의 기억들이 남아있는 것은 날씨를 잊을 정도로 즐거웠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었던 것 같다. 학원 하나 없던 80년대 제주도 남쪽 시골마을, 아이들에게 유일하게 넘치는 건 시간이었다. 매일 오늘은 무얼 할까 고민하던 어느 날 언니와 원시인 놀이를 해보기로 했다. 마침 우리 집에 놀러 온 옆집 미숙언니도 합세해 의견을 모았다. "원시인 모험을 떠나보는 거야." "여러 날을 밖에서 지내보자!" "그럼 안돼. 혼나. 그냥 아침부터 저녁까지로 하자. " "그럼, 그러자." "원시인은 우리처럼 말을 못 했을 거야." "고릴라가 내는 소리와 행동은 할 수 있었겠지?" "배고프면 열매를 따먹자." "배고플 텐데.." "그럼 간식을 챙겨가자." "모험인데 아이들을 더 모아야겠어." 서로의 의견으로 탑을 쌓다 보니 제법 모험 같아 보이는 계획이 완성됐다. 내 친구 민욱이 자매까지 모험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9시 동네 열녀비 앞에서 모여 출발하기로 했다.


다음날 들뜬 표정으로 모인 우리는 출발하기 전에 미숙언니를 대장을 뽑았다. 대장은 어제 만들어 놓은 모험 규칙을 다시 한번 알려주었다. 첫째, 모험하는 동안 손짓, 몸짓으로만 얘기한다. 단, 고릴라 소리는 허용한다. 둘째, 열매로 허기를 채우되 부족할 경우에만 가져온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셋째,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손으로 타임 표시해서 말할 수 있다. 단, 모두가 동의할 경우에만 가능하다. 넷째, 우리는 진짜 모험을 떠나는 것이기 때문에 진지하게 임한다. 모두 규칙을 지키기로 약속하고 드디어 열녀비 옆으로 난 작은 비포장 샛길을 따라 출발했다.


열세 살 미숙언니가 앞장섰고, 열두 살 옥주언니, 열한 살 민경언니, 열 살 민욱이와 내가 뒤따라갔다. 우리의 목적지는 내창(내川의 제주도 방언)이었다. 인적이 드물고 풀숲이 우거진 데다가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이어서 모험을 시작하기에 가장 적당했다. 종종 뱀이 출몰하긴 했지만 우리 다섯이라면 두려울 것이 없었다. 산 중턱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내창을 통해 바다까지 흘러가기에 산 쪽으로 거슬러 가다 보면 한라산까지도 다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윗동네 내창인 '우꾸물'까지만 가봤기 때문에 더 올라가면 뭐가 있을지도 궁금했다.


물이 가득 차면 어른 발도 닿지 않는 깊은 내였는데, 비가 안 온 지 한참이라 물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곧바로 건천 바닥으로 내려가 산 쪽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바닥에는 크고 작은 돌이 많아 걷기가 쉽지 않았다. 걷다가 대장 지휘에 따라 높은 바위를 등반하고 수풀 쪽으로 내려와서는 열매를 찾으며 덤불을 헤쳤다.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서로의 진지한 모습에 눈을 마주치면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정말 사람의 언어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직선거리로 500미터도 가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뱃속이 꼬르륵거렸다. 울퉁불퉁한 냇바닥부터 암벽을 등반하고 풀숲을 헤치며 열매를 모으고 다니느라 그럴 만도 했다. 누군가가 "우-우" 소리를 내며 입에 무언가를 가져가는 시늉을 했다. 우리는 춤추는 원숭이들처럼 손뼉을 치며 발을 굴렀다. 모두 동의한다는 의미였다. 그늘을 찾아 앉아 채집한 열매들을 맛보았다. 어떤 것은 너무 씁쓸했고, 어떤 것은 먹을 수는 있었지만 맛이 없었다. 오만상 가득 찡그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깔깔거렸다. 아쉽게도 우리가 수확한 열매들은 대부분 버려야 했다. 동네에서 비파, 탈(산딸기), 제밤(구실잣밤) 같은 열매를 철마다 흔하게 볼 수 있었기에 기대를 했지만 여름이라서 그런지 먹을 만한 것이 없었다.


원시인에게는 어울리지 않지만 하는 수 없이 가방에서 먹을 것을 꺼냈다. 약속한 것은 아니었지만 다들 챙겨 온 간식이 라면이었다. 라면을 부숴 스프와 섞고 봉지 사면을 활짝 펼쳤다. 손을 사용하지 않고 라면봉지에 입을 대고 게걸스럽게 라면 조각들을 흡입했다. 누가 더 야만스럽게 먹는지 경쟁하느라 엉망이 된 서로의 얼굴을 보며 배꼽을 잡고 깔깔 웃었다. 그러고는 먹을 수 없던 열매를 짓이겨 흙과 섞어 얼굴에 바르고 킹콩처럼 가슴을 두드리며 누가 더 희한한 괴성을 지를 수 있는지 내기하듯이 괴성을 내질렀다.


한바탕 재미있게 놀다가 다시 모험을 떠났다. 조금 가다 보니 어디선가 남자아이들 목소리가 들려왔다. 멀리서 보니 내창에서 개구리를 잡아 구워 먹는다는 우리 반 남자아이들이었다.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에는 야만인 같은 아이들과 말도 섞기 싫었는데, 방금까지 최고의 원시인이라며 괴성을 지르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슬그머니 귀에 꽂았던 강아지풀을 빼고 얼굴과 옷을 털었다. 그 아이들이 멀리 지나갈 때까지 우리 중 누구도 고릴라 소리를 내지 말았으면 하고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남자 아이들은 우리를 흘끔흘끔 쳐다보고는 실실 웃으면서 지나갔다.


윗동네 내창인 우꾸물에 도착했다. 이곳은 아래쪽으로 물이 내려가지 않도록 내창을 인위적으로 막아 저수지를 만들어 놓은 곳이었다. 하루 중 가장 더울 때여서 그런지 아이들의 첨벙거리는 소리가 멀리서도 들렸다. 우꾸물 옆에 쓰러져가는 초가집이 한 채 있었다. 밤이 되면 인적이 끊기고 가로등 하나 없이 완벽한 어둠으로 내려앉는 곳이라 한낮의 초가집도 으스스해 보였다.


우리는 초가집과는 멀찍이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대장이 처음으로 타임 표시를 해왔다.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표시였다. 서로 눈치 보다 타임에 동의했다. 대장은 그 초가집에 살던 가족에 관한 사건을 안다며 말을 꺼냈다. 온 가족이 TV앞에 모여 매주 전설의 고향을 시청하던 때였으니 귀신, 도깨비가 실제 하는 것처럼 무서웠던 시절이었다. 그 언니가 해준 이야기는 상상인지, 사실인지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법한 이야기였다. 한 낮인데도 오싹해져 추웠다.


그 후로 누가 먼저 물로 뛰어 들어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중산간까지 올라가겠다는 우리의 포부는 우꾸물에서 멈추고 말았지만, 이것으로도 매우 만족스러운 모험이었다. 한참 물놀이하고 나와 뜨거운 태양 아래 젖은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리는 지쳐 있었지만 얼굴에 미소가 한가득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날 인생의 아주 중요한 것을 경험했다. 모험은 TV 속에서나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모험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여름날의 즐거웠던 기억은 지금까지도 미소짓게 만든다. 어릴 적 수많은 날들 중 하루였지만 그 추억은 마음속에 따스함으로 남아있다, 그런 추억이 쌓여 단단한 나의 내면을 이루고 가정과 사회에서, 특히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릴적 원시인 대모험같은 여행은 아니지만, 나는 나름대로의 모험을 떠나는 중이다. 글쓰기라는 배를 타고 내면 깊숙히 탐험하는 모험 말이다. 한번도 떠나본 적 없기에 떨리는 마음으로 항해하는 중이다. 나와 함께 항해하는 즐거운 여행이 되길, Bon Voy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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