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 만큼만 일해

by 얀느

"받는 만큼만 일해. 누가 알아준다고 그래?" 남편에게 종종 듣는 말이다. 일에 대한 내 열정이 과하다는 뜻이면서, 받는 월급이 그만큼 적다는 의미일 것이다. 소방관과 변호사의 가치를 급여로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듯, 급여의 많고 적음으로 일의 가치를 매길 수는 없다.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그저 주어진 일에 충실할 뿐이다. 이것저것 재면서 살기에 세상은 너무 복잡하니까.


40대 중반이 되어서야 경력단절을 끝내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육아에 전념했던 시간의 괴리가 이리도 클 줄이야. 무슨 일을 하든 손이 많이 갔다. 기안을 올리는 법도 몰랐고, 물건 구매 품의 올리는 것만도 한 시간 넘게 걸렸다. 그러니 행사 및 프로그램 기획, 장서점검, 신간도서 구입, 폐기, 도서관 운영위원회 개최 등은 말할 것도 없이 하나하나가 넘어야 할 산이었다.


내가 애초에 학교사서를 직업으로 택한 이유가 있다. 책을 좋아하기도 했고, 아이들 키우면서 정시 퇴근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교의 특성, 일하는 사람, 경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1인 사서라 나에게 일을 가르쳐주는 동료나 사수가 없으니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정시에 퇴근하지 못했다. 하던 일을 끊고 집에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내일은 또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초반부터 무엇이든 팔 걷어붙이고 했다. 정시에 퇴근할 수가 없었다. 종종 주말에도 출근하여 못다 한 일들을 마무리했다. 배운다는 마음으로, 서툰 일을 내 것으로 만든다는 생각으로 차근차근해나갔다. 도서관에서 다양한 프로그램, 독서토론, 행사를 준비하여 진행했다. 내가 무엇을 하든 학생들이 좋아했다. 자연스레 도서관 이용자가 더 많아졌고, 나는 더욱더 신이 나서 일했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그동안 쌓인 경험과 데이터, 그리고 학생을 대하는 태도는 내 안의 든든한 자산이 되었다. 사람들 앞에 서면 얼굴이 빨개지던 증상도 자연스럽게 없어졌다. 여러 소중한 것들이 머리와 가슴, USB에 담겼다. 이제는 어깨에 힘 잔뜩 주고 무엇이든지 배워보려는 시기는 지나갔다. 그간 하고 싶었던 일과 원하지 않았던 일까지 원 없이 다 해봤으니, 그 자산이 쌓여 꽤나 여유로워졌다.


나는 원래의 취지대로 우리 집 아이들에 더 신경 써야 했지만 나는 돈도, 아이들도 택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내 성장'을 택했다. 전에는 아이 옆에서 하나하나 해주었지만, 엄마가 바빠지니 아이들은 자연스레 스스로 챙기는 법을 터득해 갔다. 물론 빠뜨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아이들이 그 경험에서 책임감을 배울 거라 위안 삼았다. 아이들과 초보워킹맘의 성장 드라마를 써 내려간 5년이었다.


'받는 만큼만 일하라'는 말은 맞기도, 틀리기도 하다. 지난 5년은 황무지에 씨앗을 뿌려 작은 숲을 만드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동안 스스로에 의심 가득한 사람에서, 흔들림 없이 단단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돈으로는 바꾸고 싶지 않은 소중한 가치를 얻은 것이다. 황무지에서 쌓아 올린 자기 효능감을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 하고자 하면 못할 것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오늘도, 그저 스스로를 믿고 나아간다.


*자기 효능감: 어떤 문제를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기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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