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 이사 온 지 10년이 넘어간다. 고등학생 큰딸이 7살 때 이사 왔으니까 벌써 그렇게 되었다. 원래 살던 동네는 아이들 키우기에는 그다지 환경이 좋지 않았다. 청과물 시장이 인접해 있는 대로변이라 골목마다 트럭이 많이 다녔고 소음과 매연도 심했다. 큰딸이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아이 키우기 적당한 곳을 찾아 이사 가고 싶었다.
육아 환경에 무엇이 중요한지에 따라 조건이 달라진다. 내 경우에는 학원가가 밀접한 곳도 아니었고, 교육열이 높은 곳도 아니었다. 한강에서 멀지 않으면서 초등학교, 도서관과 산이 가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았다. 지도를 펼쳐놓고 한강을 중심으로 학교와 산에 동그라미를 치며 찾다 보니 살던 동네와 멀지 않은 곳에서 적당한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지도에서 본 그 동네를 주말에 나들이 삼아 다녔다. 생각보다 지하철역이 멀지 않았고, 도서관이 초등학교 바로 옆에 있었다. 가까이 산 둘레길에다 숲 속 놀이터도 있어 볼수록 마음에 드는 동네였다. 전통시장까지 가까이 있어 바로 결정하고 이사 올 수 있었다. 집 가까이 유치원에 큰 아이를 보낸 후 유모차에 둘째를 태우고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수선집, 세탁소, 빵집, 문구점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며 하루하루 반경을 넓혀갔다.
그러던 어느 날 공원에서 승현이 엄마를 만났다. 유치원 등하원 때 마주쳐 눈인사만 하던 사이였다. 내가 먼저 아는 채하며 말을 걸었다. 이 동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요즘 동네 구경 다닌다고 하자 승현엄마가 뜬금없이 물었다. "도대체 왜 이 동네로 이사 왔어요?" 이곳은 학생수가 매해 줄고 있는 서울의 변두리라며 아이가 입학을 앞둔 시기에는 목동 같은 곳으로 이사 가야 한다고 말했다. 본인은 곧 갈 거라며 다시 생각해 보란다. 이사 온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다시 생각해 보라니. 나는 그만할 말을 잃었다.
당시 나는 책육아를 하고 있었다. 육아의 중심에 책을 두어 아이가 책과 친해지기를 바랐다. TV 영상은 최소로 보여주는 대신 집안 여기저기 손 닿기 쉬운 곳에 책을 두었다. 밤이고 낮이고 원하는 만큼 읽어주다 보니 아이에게 책은 휴식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덕분에 나도 그림책 읽기의 즐거움에 빠져 들었다. 예술작품 같은 그림과 간결하지만 마음을 훑는듯한 문장의 매력에 푹 빠졌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연과 도서관이었다. 그 의도에 충실한 동네를 찾아 이 동네로 왔다. 아이들은 도서관 온돌 바닥에 누워 책 읽다가 종종 도서관 구내식당에 가서 돈가스를 사 먹자고 졸랐다. 도서관 돈가스는 아이들의 최애 메뉴였다. 책 읽기 싫은 날에는 숲 속 놀이터에 가서 놀았다. 그리고 틈만 나면 아이들과 자동차를 타고 여기저기 놀러 다녔다. 사계의 변화를 아이들과 함께 눈에 담고 즐기며 마음속에 담아두었다. 다시 오지 않을 눈부신 날들이었다.
큰아이 고학년 때 내 공부를 시작했다. 취업이 시급하여 열심히 하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적어지고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도 그만큼 적어졌다. 저녁 하고, 설거지하고, 숙제를 챙겨주다 보면 잠잘 시간이 되었다. 엄마가 봐주던 큰아이 수학도 엉망으로 진행됐다. 사교육에 발을 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문과형 딸을 위해 수학 학원이 필요했다. 공부는 선생님께 맡기고 엄마는 학원비를 버는 그 시스템이 시작된 것이다. 결국 아이는 하교 후 필요한 학원이 모두 모여있는 목동으로 가게 되었다.
그때 승현이 엄마의 말처럼 진작 목동으로 이사를 갔어야 했을까. 그랬다면 고등학교 공부가 갑자기 어려워져 힘들다는 큰 아이가 조금은 덜 고생스러웠을까. 모르겠다. 그때는 아이의 하교 후를 콘크리트 건물에서 건물로 옮겨 다니며 보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아이는 그 시간에 마음껏 책 읽었고, 몇 시간이고 그림을 그렸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글 쓰는 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여기저기 다니며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덕분에 한글책, 영어책 가리지 않고 재미있게 읽는 아이로 컸다. 이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좋은 여건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은 마음은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과하게 허리띠를 졸라매며 뒷바라지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만 행복한 육아란 것이 있을까? 그들은 부모의 얼굴을 거울처럼 보며 자라기에 말이다. 나는 그저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행복한 육아를 하고 싶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그 방법이 옳았는지는 모르겠다. 과거는 언제나 아쉬운 법이니까.
우리가 지낸 아름다운 날들이 아이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다고 해도 괜찮다. 아이가 읽었던 책, 썼던 글, 함께 경험했던 것들이 모여 지금의 아이를 만들었으니. 그거면 족한 거다. 부족한 대로 채우고 싶은 여백이 있는 정도. 딱 그렇게, 난 그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