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쳐 덕후 가오리 언니 2
"얀느야, 올해 10월에 2ne1 콘서트가 열린대. 티켓을 구할 수 있을까?" 지난해 7월 가오리 언니로부터 카톡이 왔다. 콘서트가 3개월 후에 열리는데, 그 예매를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은퇴한 줄 알았던 2ne1이 콘서트 연다는 소식도 놀라웠지만 언니가 그것을 보기 위해 하와이에서 서울로 올 각오를 했다는 것도 놀라웠다. 모처럼 언니의 부탁이기도 하고 그녀들이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아이돌도 아니기에 티켓 예매는 어렵지 않겠다 싶었다.
2NE1 티켓 오픈 일이 되었다. 내가 한창 빅뱅 콘서트 예매하던 때와는 달리 지금은 해외 팬들을 위한 글로벌 사이트가 마련되어 있어 언니와 함께 예매하기로 했다. 한국 시각 오후 8시, 하와이 시각 새벽 1시, 언니와 나는 각자의 컴퓨터 앞에서 예매 준비를 마쳤다. '콘서트 티켓 예매 성공하는 법'에 관한 블로그 글을 여러 편 읽어 두었고, 예매 사이트에 로그인하여 결재 시스템 체크까지 마쳤다. 네이버 초시계 세팅 후 언니에게 카톡으로 '화이팅' 이모티콘을 보냈다. 언니도 '필승을 다짐하는 토끼'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드디어 오후 7시 59분. 오른손은 마우스 위에 갖다 대고, 사정없이 방망이질 치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시계의 초침을 응시했다. '7시 59분 58초, 59초, 00! 클릭',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컴퓨터 화면에 뜬 메시지는 '대기 번호 300,000번째'였다. 하와이에서 접속한 가오리 언니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2ne1을 너무 만만하게 봤나 보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몇 개월 후 있었던 2025년 4월 앙코르 공연 예매에도 똑같은 방식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이 치열한 전쟁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너무나도 아쉬워하는 언니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사기가 아닐까 걱정되는 마음 애써 누르며 웃돈 조금 얹어 당근마켓에서 티켓 두 장을 구할 수 있었다.
내가 콘서트에 간다니 주변에서 이런저런 조언을 아낌없이 해주었다. 가령 '틈나는 대로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외워라. 가수와 함께 노래를 부르면 더 즐겁다.', '몸 흔들기 뻘쭘할 때 뭐라도 흔들 것이 필요하니 응원봉을 준비해라.', '날이 쌀쌀해도 옷을 가볍게 입고 가라. 뛰다 보면 덥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2NE1 노래를 들었고, 응원 봉도 샀고, 그들과 관련한 정보를 수집하고 신문 기사도 틈틈이 읽었다.
2월부터 2ne1의 한 멤버에 관한 걱정스러운 기사가 종종 나왔다. 사실이 아닌 일을 진짜인 것처럼 반복적으로 SNS에 올리고, 해외 콘서트에서 성의 없는 무대 매너로 질타를 받고 있다는 기사였다. 급기야 한 팬 커뮤니티에서 공식 입장까지 냈다. 긴 공백기를 깨고 활동을 시작하는 그룹 명성에 피해 가지 않도록 그 멤버를 그룹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적지 않은 금액을 지불하고 시간 내어 공연을 보러 가는데 가수가 성의 없는 무대를 보인다면 꽤나 실망스러울 것 같았다.
드디어 4월 15일 콘서트 당일이 되었다. 가오리 언니와 아침부터 만나 시간을 보내다 올림픽 경기장으로 이동했다. 세찬 비바람으로 벚꽃이 다 떨어진 주말이었다. 날이 쌀쌀해 커피숍에서 몸을 녹이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언니가 지난해 말 일본의 고베와 도쿄 2NE1 콘서트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매 실패로 엄청 실망하던 언니를 위해 따로 티켓을 구했던 나는 많이 당황스러웠다. 굳이 이번 콘서트에 올 필요가 있었을까. 이번이 투어 마지막으로 언제 다시 열릴지 모르고, 케이팝 공연은 서울이 Best of best라며 꼭 오고 싶었단다. 그런 언니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저 열정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드디어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노래를 모두 외우지는 못했지만 혼자서 이어폰으로 들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에너지였다. 그들이 춤과 노래를 통해 뿜어내는 카리스마는 만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나도 완전 신났다. 좌석이었지만 공연 내내 일어나 몸을 흔들었고, 지치면 응원봉을 흔들었다. 내가 걱정하던 그 멤버도 언제 그랬냐는 듯 최선의 무대를 보여줬다. 무대 위에 함께 있어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그녀들을 보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게 열정의 도가니였던 두 시간 반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2ne1은 청순, 섹시, 귀여움으로 무장한 걸그룹이 대세였던 2009년에 데뷔하였다. 예뻐 보이려 하지 않는 대신 자신감 넘치고 독립적인 여성상을 추구하던 개성 강한 그룹이었다. 데뷔 후 몇 년의 활동, 해체, 8년 후 재결합, 집에 돌아오면서 가오리 언니에게 들은 그들의 여정은 그녀들의 무대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 주었다. 이번 콘서트에서 나는 2ne1의 팬이 되어 돌아왔다.
나의 소망은 생각이 유연하고 성격이 유쾌한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이다. 많이 읽고, 쓰고, 다양하게 경험하는 삶을 실천하다 보면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소망이 나를 2NE1 콘서트로 이끌었다. 가수 콘서트가 처음이니 경험치 1 레벨이 올라갔고, 가오리 언니와 함께하는 첫 콘서트였으니 한 번에 2 레벨이나 올라가는 꽤 괜찮은 경험치인 것이다. 언니는 다음날 바로 하와이로 떠났다. 나는 일찍 일어나 출근했고 집에는 지난밤의 증거인 응원 봉만 남았다. 경험치 2레벨도 내 안 어딘가에 쌓였겠지. 앞으로 그녀들이 영원히 멋있는 언니로, 할머니 될 때까지 즐겁게 활동하기를 응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