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주 운곡서원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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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마을을 구석구석 찾아다녔다. 한 월간 문예지에 연재하는 목적이었다. 고유의 정신문화와 양식을 대대로 보존해 온 한옥마을에 그 기준을 두었다. 그렇게 방문한 전통마을이 32곳, 24회 연재를 끝내고
『뿌리 깊은 한국의 전통마을 32』(수필과비평사, 2023.8)라는 책으로 묶었다. 옛 마을을 다니면서 새롭게 눈에 든 게 은행나무였다. 그런 은행나무 역시 마을 생성 때부터 마을과 함께하며 시대를 보내고, 내력을 지켜본 그런 나무일 것이었다.
밀양 금시당, 의령 곽재우 생가 앞, 세간리 현고수, 영양 연당마을, 밀양 죽원재사, 밀양향교, 하동 쌍계사, 청도 적천사, 부산 범어사, 달성 도동서원, 전주향교... 우선 떠오르는 장소만 나열해 봤다.
푸른 잎이 풍성한 은행나무도 청청하여 싱싱한 기운을 주지만, 노란 나무로 변신한 황금색 은행나무 자태는 숨이 멎게 할 만큼 장관을 이룬다. 이런 은행나무들만 한데 모아보고 싶어서 브런치를 시작했다. 고목부터 만나보고 이후 가을을 장식하는 은행나무를 데려와 보려고 한다.
경주 운곡서원부터 시작하기로 한다. 부산에서 경주야 무시로 드나드는 곳이다. 아무리 가도 물리지 않는 곳이 경주인데, 그 경주에 운곡서원이 있다. 경주 강동면 왕신리 운제산 자락에 자리한 운곡서원은 안동권씨 시조 권행의 공적을 추모하는 공간이다. 이 서원의 가을 풍경은 은행나무가 방점을 찍는다. 400년 안팎 수령인 은행나무는 그 앞 정자 유연정과 어우러져 고상한 풍경 한 폭이 된다. 어쩌다 보니 갈 때마다 11월이었는데 잎이 노리끼리하다. 나무가 우람하니 물드는 과정도 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