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전주향교
전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고장이다. 《수필과비평》지로 2004년에 등단한 지 스무 해째, 이 수필과비평사의 본 고장이 전주다. 수필과비평작가회의에서는 연 2회 동계와 하계 세미나를 개최하는데 그중 동계세미나는 전주에서 열기 때문이다. 꼭 20년을 세미나 차 들락거렸다. 세미나가 끝난 저녁에는 전주 막걸리골목으로 몰려들 갔는데 회원들이 가게마다 죽치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식사는 어김없이 콩나물국밥이다. 어느 해인가는 폭설이 내렸는데 그 설야의 설렘은 두고두고 회자하는 이야깃거리다.
웅크리고 눈을 뒤집어쓰며 막걸리골목을 걷던 그림, 한옥마을과 전동교회, 태조 어진이 있는 경기전, 태조가 잠시 머물렀다는 오목대, 보기만 해도 가슴 떨리는 최명희문학관...이런 전주라서, 조선의 왕족들과 대한제국의 황족이 가졌던 성씨라는 전주이씨도 다시 보게 된다. 오목대로 가는 계단에서 내려다보면 한옥마을 정경이 한눈에 든다. 잘 보전해서 잘 물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풍경을 볼 수 있다.
전주에서 경기전은 꼭 관람해야 하는 장소다. 특히, 역대 왕조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실록은 춘추관, 충주·전주·성주사고 총 4곳에 보관했는데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며 전주사고를 제외한 나머지 사고는 병화로 소실됐다. 그 전주사고가 실록각이라는 현판을 달고 이곳에 있다. 알고 가면 보이지만 모르고 가면 건물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들락거린 전주였음에도 전주향교에 간 적이 없다. 작년에야 은행나무를 보러 부러 갔다. 한옥숙소가 이어지고, 그 골목을 사이에 두고 전주향교가 위풍당당한 은행나무를 거느리고 그곳에 있었다.
고려 공민왕 3년(1354)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전주향교, 태조 어진을 모신 경기전이 들어서면서 향교에서 들리는 책 읽는 소리와 회초리 소리가 시끄러워 서쪽 화산동으로 옮겼고,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었다가 현재의 자리로 옮겨 다시 지은 다사한 내력을 품었다.
푸르른 은행잎을 보면서 노란잎을 보러 꼭 오고 싶다는 간절함이 들어섰다.
명륜당 은행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