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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얀얀 Dec 24. 2022

갈등의 서막

앗싸와 인싸 in Tamsui


vol 7. 갈등의 서막




의 여행 메이트는 멋지다.

지난밤의 대화로 선명해졌다. 세계 곳곳의 좋은 곳을 두루 다녀본 아이였다. 당당했고, 아는 것이 많았다. 여유에서 나오는 위트도 좋았다. 참. 돈도 역시 많은 것 같아. 이렇게 자유롭고 멋지게 사는 아이도 당연히 있는 거지. 게다가 부티가 흐르는데, 이 여행의 빈티를 태연히 받아들이는 지점이 좀 멋있지 않냔 말이지.


친구는 대만에 쉬러 왔다. 꼭 어디를 가야 한다거나, 무엇을 봐야 한다는 게 없었다. 여행카페에서 만났으므로 나를 만날 때 여행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으리라 기대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럴 리가 있나. 비행기 티켓 싼 거 찾고, 사지도 못할 여행가방 고르고, 그런 것에 에너지를  써버렸다고. 나에게는 딱 가이드북 한 권만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너는 그것조차 없잖아

우리의 여행은, 대책이 필요 없는 인간과 대책이 별반 없는 인간의 만남이었다. 하여, 어디에 가고 무엇을 먹을 것인가 하는 것들이 그 흔한 충돌 없이 대충, 잘, 결정되었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이라는 대만영화가 있.

아시아권에서 대인기를 끈 영화로, 물론 나도 봤다. 대만 청춘영화는 하나의 장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만의 감성이 있다, 들 하더라고. 이 영화를 보기 전, 그 백미라는 결말의 비밀을 알게 되어 김 빠진 콜라를 들이키듯 보고 말았지만 영화의 배경이 된 항구도시, 단수이에는 가보고 싶었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가보고 싶어지지 않을까.


출발하기 전, 시먼역에 들려 아종면선 한 그릇씩을 먹로 했다. 흡사 옛날 떡볶이 그릇 같은 연두색 그릇을 하나씩 들고 대만인들은 능숙하게 후루룩, 곱창국수를 들이킨다. 가게 밖, 길에 서서 그릇을 들고 먹어야 한다. 한 입 떠 넣는데, 이런, 이거 맛있단 사람 다 나와. 워낙 유명하다고 듣기도 했고(값 싸고) 맛있다길래(값도 싸니까) 먹어봐야지 했는데. 작은 그릇으로 주문하길 잘했다. 우리는 대만 향신료 특유의 향 때문에 고생 중이다. 둘 다 남기고 말았다.




mrt 단수이선을 타고 북부 타이베이, 단수이로 간다. 한낮의 기온은 매일 30도를 가볍게 넘기고 있다. 도착해 역에서 나와 강변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단수이 라오제(시장)를 둘러보았다. 걸어서 훙마오청, 빨간 벽돌이 멋진 옛 영국 대사관을 차례로 둘러봤다. 푹푹 찌지만 풍광이 볼만 사진 찍기 좋은 곳들이 제법 있다.


그렇게 걸어 영화의 촬영지이자 남자 주인공인 저우제륜의 실제 모교인 담강고등학교 앞까지 왔다. 하이틴물 애호가(나!)는 속으로 살짝 신이 난다. 여기구나. 남녀 주인공 상륜과 샤오위가 거닐던 교정. 학생들의 모습이 무척 싱그럽잖아. 학교에 들어가도 되는 걸까 싶은데, 수업시간은 지난 것 같고 다른 관광객들도 있어 스스럼없이 들어가 본다. (이제는 주말에만 입장이 되는 것 같다)


담강고등학교는 이국적이고 고풍스러웠다. 옆으로 늘어선 야자수, 클래식한 건물양식이 어우러져 분위기가 있달까. 예술인재들을 많이 배출한 학교라는데, 영화의 주연 배우이자 감독인 저우제륜이 자부심을 가질 만하. 둘러보다 보니 영화 속 장면이 겹쳐와 혼자였으면 분명 감상에 젖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모교가 세월이 지나도 이렇게 쁘다니, 영화에 담아 뽐내고 싶을 법도하겠다. 


얼마 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가 화제를 모았었지. 실제 촬영 장소는 김밥집이 아니라는데, 그 드라마를 촬영했다는 사실만으로 가게는 유명해졌다. 김밥을 먹을 수 없는데, 다른 것을 먹더라도 가본다는 것이다. 일전에 우연히 그 가게 앞을 지날 일이 있었는데 '어, 거기네.' 하고 1초도 머뭇거리지 않고 무심히 지나갔었다. 사진 찍고 이런 거 절대 없다는 거지. 그런 사람이다, 나는.


이렇게 해봐, 뒤돌아 보는 순간! 찍어줄게.

그런데, 여기서 지금 한참 포즈를 잡고 있는 이 여인은 누구인가. 그 애의 지시에 따라 몸을 요리조리 움직인다. 스스로도 우습다. 잘 될 리가 있나. 이런 걸 해본 적이 있어야지. 불안한 시선, 떨리는 입꼬리가 당최 나아지지 않잖아.


바로 얼마 전, 그 애는 어땠나. 이렇게, 저렇게, 요렇게 하는 거라며, 펄쩍 뛰어오르는 순간을 찍어달라지를 않나. (순간포착 가능함?) 그 험난한 과정을 마치고 내 차례가 된 것이었다. 귀여움, 어려운 것이었다.

하아, 난 글렀어.




어느 날이었나,  애는 말했다.


말이지, 나는 왕따야.



!!!!!
(갑자기?)





남친이랑 둘이만 절친.
우리는 둘이서만 밥 먹고,
둘이만 어쩌고 저쩌고.






후아...... 이게, 정말. 





별다를 것 없이, 슬슬 관광하고, 돌아와 촌스러운 호스텔에서 맥주를 하나씩 까먹고, 하루하루는 지나갔다.


그때는 몰랐다. 우리가 함께 한 날들에 내가 스스로  있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많은 것이 처음이었던, 참으로도 서툴렀던 내가 대만에서 어떻게 흔들는지, 이제 말해야 하겠다.







   [사진 출처 :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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