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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얀얀 Dec 14. 2022

그 애가 왔다

like  thunder


vol 6. 그 애가




그 애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정돈되고 세련돼 보였다. 얼굴에 여유가 흘렀다. 보자마자 느꼈다. 이 사람은 뭔가 경험치가 있는 인간이야. 반면 나는 어떤가. , 무슨 객기로 여행 메이트를 구. 기가 죽잖아.


함께 호스텔로 다. 숙소를 고르고 예약하는 것은 전적으로 내가 했다. 왜냐고? 그는 나에게 맞춰줄 수 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 여행을 함께 한다,라고 하는 것에 그런 것들이 암묵적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그 애는 부유해 보였다. 그리고 앞으로 며칠간 가난할 예정이었.


숙소를 옮겼다. 내가 있던 게스트하우스는 역에서 멀기도 했고, 무엇보다 같이 묵을 수 있는 방이 다 예약된 후였다. 비교적 가까운 호스텔의 2인실을 대충 예약했다. 지난밤 숙소가 너무 좋았던 탓이겠지. 철제 2층 침대에 오르는데 심한 삐거덕 소리가 났다. 붉고 검고 휘몰아치는 침구의 패턴을 보고 있으니 현타가 왔다.

"2층, 내가 쓸게."

이와중에도 나는 배려를 아는 인간이지.


그녀는 내가 고른 방 꼬락서니를 보고도 한마디도 불평하지 않았다. 다만 침대에 기어오르는 나를 보며 능숙하게 짐을 풀고는,

" 의 이런 점, 너무 좋다."

하며 웃었다.



홀로 나왔다.  애쉬어야 했다. 역으로 가기 전, 편의점에 들렀다. 이곳은 하철 안에서 음료를 마시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당이 당긴. 건강을 생각하는 어른인 나는 요구르트를 집어 들었다. 대만 요구르트 크기는 정말 지네. 다. 그리고 이걸 다 먹을 수 있었던 나 좀 대단해.


mrt를 타고 타이베이 처잔 역(타이베이 중앙역)에 내렸다. 역 바로 앞, 지하에 타이완 구스관이 있었다. 대만의 예전 모습을 재현해 놓은 곳으로, 개인이 20년 동안 모아 왔다고 했. 옛 교실, 거리재현한 것과 아기자기한 여러 가지  소품들에서 덕후의 냄새가 났다.


입장할 때 받은 티켓으로 기념품을 사거나 음식을 사 먹을 수 있었다. 빙수를 먹기로 했다. 식당에는 십 대 아이들이 잔뜩 와있다. 대만 청춘 영화에 주인공 친. 구. 역으로 나올법한 학생들이 가득했다. 하아, 귀엽구만. 식당 아주머니는 말도 안 통하는 데다 혼자 와 빙수를 먹는 나를 내내 신경 써 주었다. 맛있는지, 입에 맞는지(아마도) 연신 물어보시는데, 영어로는 소통할 수 없었다. 맛있다, 가 중국어로 뭐지? 오이시, 우마이 (일본어' 맛있다') 밖에 떠오르지 않잖아. 어떡하지. 아주머니께서  하시다 또 내쪽을 힐끔 보고 웃으시기에 결국  소심하게 팔을 뻗어 쌍 따봉을 날려드렸다. 야호. 성공. 옆자리 학생 웃기는 데 성공했다.



이날의 백미는 여름날 저녁, 우리의 숙소에서 일어. 후미진 골목길 안, 허름한 숙소 앞에서 그 애와 나는 맥주캔 하나씩을 홀짝이며 주저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동네 어르신 한 분이 슬리퍼를 끌고 나오시더니 바로 앞에서 우리를 삿대질하며 혀를 끌끌 차고 가시는 것이 아닌가. 그 표정은 마치 '말세다 말세야, 여자애들이 어디 남의 나라에 와서 초저녁부터 길거리에서 술을!'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순간, 몹시도 재밌고 기분이 좋아졌다. 설명할 수없다. 할아버지가 밉지 않고, 내가 부끄럽지 않았다. 괜찮다, 는 생각이 들었다. 멀어지는 할아버지의 뒤통수를 보며 언짢아 말고 웃으세요,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어르신이 손가락으로 법의 묘약을 뿌리 것이 분명하다. 대놓고 욕을 먹는데 기분이 좋다니. 그 애는 역시 아무렇지 않다. 저 의연한 모습! 웃음이 터졌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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