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지긋지긋했다. 혼자 여행을 가 한 달을 보내자,라고 생각했다. 당시 나의 은행 잔고는 백만 원쯤이었는데,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20만 원에 한 달 오픈 인천 - 타이베이 왕복 티켓을 구매했다. 공동운항이라 값싼 외항기 가격에 국적기를 탈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기내에서 모국어를 사용할 수 있고, 안전 또한 두말하면 입만 아프지. 나의 똑똑함과 치밀함에 속으로 박수를 쳤다.
서른이 목전인데, 여행 가방이 없었다.
아빠는 고루한 사람이었다. 대학 시절, 해외여행을 가겠다고 했더니 여자애가 무슨 외국을 혼자 가냐며 세상 물정 모르는 한심한 인간을 보듯 나를 쳐다봤다. 아빠 지인이 가이드하는 여행사의 단체 패키지 상품이 아니면 갈 수 없다고 했다. 졸업 때까지 여행을 가는 일은 없었다.
백패커들이 많이 찾는다는 서울의 한 가게를 찾아갔다.
가방들의 기능과 재질, 가격까지 완벽히 탐구했다. 불편함은 없을지 둘러매어 보고, 나의 분위기와 잘 맞는지 거울 앞에서 폼도 실컷 잡았다. 도중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었지만, 역사적인 첫 배낭여행이었다. 다섯 시간을 넘기니 완전히 진이 빠졌다. 선택만이 남았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가게를 나왔다. 결론적으로, 내가 택한 가방은 너무 비쌌다. 비행기 티켓 가격이었다. 그 좋은 가방이 날 멋진 곳으로 데려다줄 것 같았지만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감상에 젖을 순 없었다.
가방은 빌리기로 했다. 그리하여 검정인지 초록인지 어딘가의 늪지대를 연상케 하는 캐리어가 내게로 왔다.
백패커의 의미가 무색해지는, '아름다움의 회복'이라는 이 여행의 본질을 훼손시킬 것만 같은 가방이었다. 끌어보니 끌려는 오는데 바퀴가 잘 움직이지 않았다. 나의 멋진 가방이 보고 싶었다. 그래도 나는 이 가방을 빌리기로 했다.
떠나보기로 하면서 마음먹은 것이 있다. 나에게 한 없이 관대한 여행을 하자, 는 것.
실수가 없을 리 없다는 걸 알았다. 첫 여행이고, 돈은 적었고, 나의 영어는 조잡했다. 이미 인생의 많은 부분에서 자빠지고 구르는 중이었다. 이번에만 예외일 리 없다. 설레었지만, 같은 무게로 충분히 겁먹고 있었다. 나를 돌보고 감싸야했다. 여행 내내 관대해지자,라고 주문을 외우기로 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고 마침내 대만으로 떠나는 날이 밝았다.
눈을 뜨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늦잠을 잤다. 잠깐 동안 현실 부정의 시간이 지나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대만 땅을 밟기도 전에 주문을 써먹어야 할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