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마이 카>의 주인공 가후쿠와 나는 묘하게 닮아있다. 이 영화 제목에 영향을 준 질환 녹내장을 둘 다 앓고 있다는 점부터 하나의 극을 총괄해 연출을 해본 경험, 심지어는 가후쿠의 아이 생일이 나와 단 하루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는 것까지. 그리고 내가 적어나갈 그의 내면적인 부분에서도 과거의 나를 발견하게 된다. 신기한 영화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임에도 내가 재개봉 관람 전까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던 지점이 있다. 그는 시신경 장애를 가진 녹내장 환자였다. 위에서 말했듯 나 역시 작년 가을 위 질환을 판정받고 그 누구보다 환자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사람으로서 이 영화를 더 세밀하게 관찰할 수밖에 없었다. 안압의 상승으로 시신경이 짓눌려 결국엔 실명에 이르게 되는 이 불치병은, 자각하지 못하는 새에 조금씩 조금씩 시야를 좁혀온다.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인 검사와 자그마한 안약 몇 방울을 투약하지 않는다면 손상을 막을 수 없다. 작은 상실을 해소하지 못하다가 결국엔 더 큰 상실을 마주하게 되는 가후쿠의 삶이, 하루 빠르게 알아채야만 막을 수 있는 녹내장이라는 질환과 묘하게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재작년 대학로 소극장에서 총연출을 맡았던 뮤지컬 역시 극중극 형식을 띠고 있었다. 중학생 때부터 20번은 넘게 보았던 그 극의 라이선스를 취득하고 직접 내 손으로 올리게 되었을 때, 내가 가장 공을 들여 표현하고자 했던 부분은 다음과 같았다. 뮤지컬 속 캐릭터들이 졸업 전에 올리고자 하는 고전 작품이 그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고전적이고 클리셰한 대사들이 그들의 삶과 어떻게 맞물리고 있는지. 이 영화 역시 안톤 체홉의 <바냐 아저씨>를 만들어가는 일련의 과정으로 누군가의 삶이 꽉꽉 채워지는 모습이 보여 정말 좋았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역시 이런 지점을 하나의 연출 요소로 뽑아낸 것 같았다. (추후에 인터뷰를 찾아보니 감독 역시 이러한 연기 유형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희곡과 영화를 엮어내기 위해 고심한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중 일부라고 생각된 점 하나를 가져왔다.
가후쿠는 운전할 때마다 <바냐 아저씨> 대사를 읊조린다. 가후쿠의 아내인 오토가 '소냐' 역할을 녹음해준 테이프를 들으며 계속해서 연습한다. 오토의 외도를 목격한 이후 오토를 회피하던 가후쿠는 그 상황에서 그녀의 목소리로 녹음된 <바냐 아저씨> 테이프를 듣는다. 어쩌겠냐고, 또 살아가야 한다고. 길고 긴 낮과 긴긴밤의 연속을 살며, 시련을 참고 견디라고. 삶이 괴로워 어찌할 줄 모르는 바냐 아저씨가 어째 가후쿠의 상황과 닮아있다. 그 상황에서 바냐에게 건넨 소냐의 말이 가후쿠에게까지 와닿았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가후쿠는 왼쪽 눈에 녹내장 안약을 투약한다. 그의 볼 위로 흘러내리는 한 두 방울의 점안액이 마치 그의 서글픈 심정을 대변하는 듯하다. (간접적으로 심리를 묘사하고 미장센을 활용해서 여운을 준다는 점까지.. 모든 것이 흥미로웠다. 묘하고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여 진실이 오가는 대화를 할 수 있는 곳으로 폐쇄된 공간인 차를 이용했다는 점도)
'너한테 완전 상처였겠다.'라는 말 자체가 내게 상처로 다가왔던 그런 시절이 있다. 누군가에게 털어내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직면하기도 짜증 나는 그런 일들이 쌓였던 한 해. 기억 속에서 잊어버리고자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자 내 감정을 덜 소모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던 나날들.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문득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갈 때 즈음 이 영화를 처음 마주했다. 당시에는 가후쿠가 깨달은 자신의 대응 방식과 관련된 대사를 오래오래 곱씹곤 했다. “그때 당시 제대로 상처받았어야 했다고, 화를 냈었어야 한다고.” 아팠어도 다음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타인을 배려한답시고 외면했던 것들로 인해 나의 삶이 왜곡되기 전에 맞서야 한다는 것, 이 영화가 나에게 처음 안겨준 메시지였다.
나에 대한 이해가 완전해지고 타인에 대한 예민함을 아주 많이 덜어냈을 즈음 다시 보게 된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 "진정으로 타인을 들여다보고 싶으면 나 자신을 깊숙이 응시하는 수밖에 없어요.”라는 이 지극히 당연한 말. 타카츠키가 차 안에서 가후쿠에게 건넨 이 말이 가장 인상 깊다. (어쩌면 하루키가 늘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나 자신에 대한 이해가 선행된다면 타인을 쉽게 판단할 수 없게 되고, 나는 나대로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그저 살아가는 것임을 알려준 영화가 바로 <드라이브 마이 카>다. 아주 아주 소중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