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도 마주할 불행에 대비해
최근에 누군가는 나의 어떤 글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너무나도 방어적이라, 본질적인 이야기를 들여다볼 새도 없이 지쳐버린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모두가 볼 수 있는 한 칼럼에, 나의 글이 조금 더 담백해야 한다고 전했다. 평소에도 부정을 다뤄야 할 때 회피적으로 쓰고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알았기에 곧장 수긍했다.
어느 순간부터 부정적인 일들을 말과 글로 담아내는 것이 어려웠다. 기록은 나에게 있어 제일 소중하고 삶을 버티는 힘을 길러주는 수단이 맞지만, 유독 힘듦은 적나라하게 적어내지 못했다. 말과 글에 영향을 많이 받는 성격 탓에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또다시 한번 그 이야기들에 지쳐버리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홀로 자주 곱씹었고,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려웠다.
최근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몰아닥쳐 힘들었을 때, 꾹꾹 눌러 담고 있는 것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려보자.‘ 그렇게 분이 다 가시지 않은 채 집 앞 예술영화관으로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다. 확장판으로 재개봉한 니힐리즘 영화 <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보았고 그간 느끼던 불쾌한 감정들을 모조리 게워내고 올 수 있었다. 묵직했던 감정을 고스란히 상영관에 두고 온 느낌이 들어 다음 날부터는 신기할 정도로 그간 힘들었던 일들에 대해 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어쩌면 이런 점에서 내가 단순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하나보다.
삶은 잘 만들어진 영화와 같지 않아 오랜 시간 지루하기도 하고, 희망 없는 고통이 연속되기도 한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사랑과 다정함을 논하는 <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솔직히 말하자면 내 취향이 아니었다. 이전 글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입밖으론 사랑의 가치를 외치지만, 실천하기가 어려워 의식을 갖추고 다정함을 노력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주제도 주제지만, 난잡해 어지러운 느낌마저 들게 하는 독특한 B급 연출까지 친숙한 작품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올해 개봉작 중 나에겐 2022년 최고의 영화로 자리 잡았다. 에블린의 욕망으로 가득 채워져 결국엔 짙은 니힐리즘에 빠져버린 조부 투바키의 삶이 절절하게 와닿았다. 그 감정의 합일이 이뤄졌을 때의 쾌감을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다중우주론을 소재로 삼아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영화를 본 다음 날, 거리를 거닐며 내겐 다소 생소했던 멀티버스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 만약 내가 선택한 것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면, 선택되지 못한 후보들의 파편이 모이고 모여 또 어떤 유니버스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곳에서의 나 역시 또 선택에 후회와 걱정을 하며 묵묵히 잘 살아가고 있을 생각을 하니 든든한 힘이 됐다. 살다 보니 다중우주론으로도 큰 위로를 받는구나 싶었다.
거닐던 동시에 문득 나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가장 큰 무언가는 예술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거의 10년 가까이 연극과 뮤지컬의 세계에 흠뻑 빠져 살았고, 살아가며 받은 상처는 문학작품과 영화로 간간히 치유했다. 특히나 나는 묵직하고 어두운 비극을 그리는 작품들을 지극히 애정하는데, 극장을 나올 때면 나에 대한 겸손함을 배우고 녹록지 않은 세상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또 깊이 있게 다뤄볼 생각이다.)
더불어 극과 영화를 보고 나오면 감상을 적어내는 것까지가 나만의 문화생활 루틴이다. 누군가는 저널리즘의 형태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작품에 대한 글을 쓰고 누군가는 지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작품을 학문적으로 더 깊이 들여다보는 글쓰기를 한다면, 나는 내 자신을 더 잘 알기 위해 감상을 부단히 적어내려갔다. 예술 작품을 매개로 나의 욕구를 더 정확하게 파악하고, 내 삶의 방식을 넓히고자 꾸준히 적었다. 평소에도 생각 이상으로 작품에 대한 감상이 예민하다고 느껴오긴 했지만, 그 취미가 나를 버티게 하는 강점이 되어줄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한 영국 문단의 시인이자 비평가인 매슈 아널드 역시 이렇게 말했다. "위대한 예술은 삶의 가장 깊은 긴장과 불안에 해법을 제공하는 매체로 존재의 부족한 부분을 해석하고 해법을 제시한다. 예술은 인간의 동기와 행동을 깊이 탐구하는 영역으로 작동한다." 내가 무엇에 진정으로 반응하고 치유받는지를 찾는 것은 중요하다. 오랜 시간 끌면 독이 되는 감정을 인지하는 순간, 나는 또다시 시간을 내서라도 내 삶에 와닿을 예술 작품을 찾아 나설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스스로 지혜롭게 해결해나갈 나를 기대하며!
*본 글 제목 "예술은 언제나 이기게 되어있습니다"는 아래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에 나오는 대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