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블랑카 공항에서 시내까지
차근차근 적어나가 보자. 이제는 익숙하고 여유가 가득한 네 번째 이스탄불의 짧은 여행을 마치고 사비하 괵첸 공항으로 나섰다. 이스탄불의 구공항인 사비하 괵첸 직원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친절하다. 몇 마디 하지 않았음에도 그들의 언어를 내뱉는 내게 많은 관심을 보이시고, 행복한 여행이 되길 빌어주신다. 그러나 감사함에 스몰 토크를 나누기에도 얼마 남지 않은 보딩타임이었다. 작지만 북적거리는 공항에서 쉬이 발걸음을 쟀다. 날은 저물고 있어 공항을 수놓은 드넓은 유리창은 금세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렇게 카사블랑카행 게이트 5번에 홀로 캐리어를 끌고 발을 들이는 순간,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설렘이 100퍼센트였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덜컥 겁이 났다. 튀르키예인들보다 더 크고 짙은 이목구비와 까무잡잡한 피부, 그리고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공기에서 툭툭 터지는 것만 같이 들려오는 아랍어와 프랑스어의 향연. 나는 그 속에 홀로 놓인 동양인 여학생이었다. 벌써부터 사방에서 시선집중을 당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럴 때마다 곱씹었다, 내가 왜 이 여행이 그토록 간절했는지. 보란 듯이까지는 아니더라도 홀로 왜 이 여행을 잘 마무리 짓고 싶었는지.
저녁 7시 55분 카사블랑카행 비행기는 역시 저가항공답게 8시 30분이 넘어서야 항공으로 날아올랐다. 하루에 딱 한 편 있는 모로코행 비행기다. 이러다간 새벽에 도착하겠다 싶어 주변 튀르키예인들이 보이는 족족 붙잡고 물어봤다. 혹시 시내까지 간다면 합승 좀 할 수 있냐고. 카사블랑카 모함메드 국제공항은 시내에서 좀 거리가 떨어져 있기 때문에 택시기사의 터무니없는 바가지에 당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시내행 기차는 이미 늦어 끊긴 상태) 내 옆자리에는 튀르키예 노부부가 앉아계셨는데, 그 두 분은 내 사정을 들으시곤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시며 여기 대부분은 단체 투어를 끼고 있거나 공항 근처의 호텔에서 숙박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뭐 그렇다고 딱히 안절부절못하진 않았다. 플랜 B를 세워놓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일전에 카파도키아도 이런 식으로 여행했었는데, 그 나름 울퉁불퉁하게 굴러가는 여행이 너무 재밌었다.)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내가 너무 무지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어이없는 상황에 헛웃음만 났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에 모로칸 입국 수속관은 근사한 차림의 옷을 입고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내 첫 모로칸. 얼마 전 있었던 한 TV프로그램의 사건으로 한국인을 향한 따가운 눈초리는 없을지 우려했지만 이건 정말 투머치 걱정이었다. 단순한 건지, 모로칸들의 환한 미소와 다정한 관심에 일말의 걱정마저 싹 내려갔다. 그러나 나는 잡아둔 숙소가 있었기 때문에 시내로 들어가야만 했다.
아프리카 뱅크 ATM기기 앞에서 택시 기사와 흥정할 마음을 굳게 다잡고 돈을 뽑았다. 현금을 뽑고 있던 와중, 모로칸 남자 2명을 만나게 되었고 그중 한 명은 튀르키예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 터키어를 할 줄 알았다. (알고 보니 같은 비행기를 타고 왔더라.) 상황을 곧장 터키어로 설명했고, 시내로 함께 들어가기로 결심했으나 택시 기사와의 흥정에는 계속해서 실패했다. 그들은 합리적인 가격을 불러도 정색하고 화를 냈다. 이것이 마지막 가격이라며 300 디르함(=한화 3만 원)을 요구했다. 3명이서 합승하면 100 디르함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여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돈은 합승할 모로칸들에게도 상당히 가격이 나가는 모양이었다. 터키어를 할 줄 알았던 모함메드는 이게 얼마나 현지인들에게 많은 돈을 요구하는 것인지 내게 설명했다. 그때가 밤 11시, 시간은 자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나는 여전히 공항에서 택시기사뿐만이 아닌 모로칸 남성들과도 가격으로 협상을 해야 했다. 그때, 또 다른 모로칸 친구인 모함메드 (이 친구 이름도 모함메드이다...)가 합류했고, 텅 빈 어두운 거리를 끝없이 걸었다. 그들은 한국에서 왔다는 내게 다소 호의적이었고, 나 역시 살아남기 위해 적절한 호응을 덧붙이며 함께 걸었다. 나도 그날 밤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추후에 만났던 여행자들의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곱씹어보면 나 역시 살면서 가장 위험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오랜 시간 기다려 60 디르함(=24000원 아낀 셈이다.)에 모로칸 6명과 함께 지나가던 그랑택시를 합승할 수 있었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들은 깜깜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택시 안에서, 하루종일 금식을 하여 배고프고 피곤할 법도 한데 자신들과 전혀 다른 문화와 생김새를 가진 내게 끝없는 흥미를 보였다. (여기까지 읽고 걱정할 수도 있겠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행히 엄청 착한 친구들이었다.) 약간의 두려움으로 움츠려있던 나 역시 살아남기 위해(?) 튀르키예에서 쌓아온 온갖 이슬람 상식과 표현, 그리고 금식에 관한 정보를 다 쏟아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예상 밖으로 너무나도 좋아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 택시 안에서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이제 상세히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친구들이 모든 짐을 들어주고 호텔까지 데려다준 후, 프렌치식 인사를 한 뒤 유유히 사라졌던 것은 기억난다. 서로의 안녕을 빌고 헤어진 뒤 카사블랑카 호텔 주인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저 친구들이 너 여기까지 데려다 준거야? 대단한걸. “
이것 역시 여행이니 나를 지키며 마음을 단단히 먹고, 상황을 이겨내야만 한다는 생각과 함께. 10일간의 모로코 여정 첫날밤은 이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