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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 Apr 23. 2023

해가 질 때까지 지속된 고요함

라마단 기간의 패기로운 여행, 그 첫 시작

 패기롭게 떠난 모로코였지만 전날의 후유증 때문인지 약간은 긴장한 상태였다. (이전 글 참조)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홀로 하는 여행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혹시 몰라 아침 시티 투어를 예약했다. 안전하게 카사블랑카의 주요 명소들을 찍어 먹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값이 꽤 나가고, 수백 개의 별 다섯 개 후기가 가득하다면 나 역시 입증된 투어를 통해 충만한 경험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로코로 여행을 오는 한국인들은 대부분 사막 투어 하나만을 바라본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모로코 각 도시 투어에선 한국어를 찾아볼 수 없다. 외국 사이트를 통해 영어 투어를 예약해야 한다. 그 투어를 예약하며 알게 된 사실인데, 모로코엔 프랑스, 스페인 사람들은 기본이고 영미권 국가에서도 모로코를 정말 많이 찾는다. 실제로 카사블랑카 투어 속 동양인은 나 혼자였는데,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자꾸만 무리 뒤에서 서성이게 되었다. 현지인이었던 투어 가이드는 금식 때문인지 그저 기분 탓인지, 힘이 많이 없어 보였다. 투어 내내 이 상업도시만의 특별함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모로코만의 정취를 흠뻑 느끼고 싶었지만 정해진 사람들과 제한된 시간 속에서 함께 움직여야만 했다.


하얀 집을 뜻하는 카사블랑카는 사실 관광도시가 아니지만, 상업지구의 중심지로 멋드러진 건축물을 많이 볼 수 있다.


메디나 밖


메디나 안


*메디나 : 모로코의 큰 도시마다 있는 미로 같은 마을. 메디나의 안과 밖의 차이는 어마무시할 정도로 다르다. 오래전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좁고 복잡하게 만들어둔 것이 특징이며, 그 옛 고유성을 아직까지도 느낄 수 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나는 감각을 곤두세우고 궁금증이 많았던 영미권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슬람권 국가의 언어를 전공하고 그 문화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는 내가, 모든 것이 새로울 그들의 질문을 듣고 있는 것은 꽤나 재미있었다. 투어를 하는 내내 그들이 던진 질문에는 이슬람권 국가의 고정관념이 묻어나기도 했고, 어쩌면 내가 처음에 궁금해했던 것들을 발견하기도 했다. 나 역시 몰랐던 점들을 하나 둘 얻어가게 되었다. 한 국가를 향한 다양한 시선을 느낄 수 있어 신기했다.


카사블랑카 메디나 곳곳엔 이런 벽화가 많다. 정치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편견으로 바라보기 금지! 축구로 유명한 모로코는 벽화로 축구팀에 대한 열광을 표한다.


 투어 마지막 즈음에는 뉴욕 증권사를 다니는 한 미국인 에릭과 나, 그리고 투어 가이드 셋만이 북대서양 해안가를 나란히 걷게 됐다. 카사블랑카는 금식 기인 라마단인 탓에 정말 모든 것이 닫혀있었고, 피자헛과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푸드점만이 남아있었다. 투어 가이드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앞으로의 끼니를 해결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내게 전하며 모로코에서 맥도날드의 위상을 알려주었다. “맥도날드는 모로코에서 정크 푸드가 전혀 아니에요. 굉장히 고급 음식이랍니다. 여기 지점은 뷰도 좋아요, 추천할게요!”


 사실 금식 기간인 라마단에는 무슬림들이 거리에 자주 돌아다니지 않는다. 음식을 먹지 않아 활동량을 줄이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일이 없는 경우 집에서 잠을 청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가뜩이나 카사블랑카는 관광도시가 전혀 아니기 때문에 식당이며 카페며, 전부 문을 열어둘 필요가 없는 것. 모로코의 전통 음식을 기대했던 나는 좌절했지만 애써 상황을 받아들이기 위해 부단히 마음을 다독였다. 튀르키예에선 내 친구들도 금식을 하고 있었지만 음식점은 오전 & 오후 내내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튀르키예가 세속주의임을 간과했다.) 에릭이 새까만 선글라스를 낀 탓에 표정을 정확히 읽을 수는 없었지만, 역시나 난감해보이는 것 같았다. 정크푸드의 나라에서 온 그는 이내 곧 맥도날드 햄버거는 절대 먹지 않을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맛이 그닥 특별하지는 않았던 맥도날드, 내 첫 끼.


 결국엔 끝도 없이 펼쳐진 대서양 뷰를 바라보며 맥도날드를 먹기로 결심한 내가 돌아서며 마지막으로 에릭에게 물었다. 이 나라엔 어떻게 오게 되었냐고. 돌이켜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질문 역시 편견이 묻어있었던 것 같다. 이슬람 색채가 짙은 아랍권 국가를 가면, 미국을 못 가게 될 수도 있다는 소리를 종종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곳에 비자를 내주냐는 나의 질문에, 에릭은 이렇게 대답했다. 미국엔 정말 모든 것이 다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여행을 하러 해외로 자주 나가지 않는다고, 그래서 애초에 여권 자체를 발급받는 경우가 잘 없지만 뭐, 문제는 없다고 했다. 남미권 국가를 가고 싶었으나 정치적으로 불안한 탓에 이곳을 택했다는 말을 덧붙이며 말이다. 30대의 뉴요커 회사원과의 대화에선 그의 자국중심적 사고가 뚝뚝 묻어났다. 이유 모를 씁쓸함을 느꼈는데 그 텁텁함이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나의 첫 시티투어는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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