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an May 01. 2023

모로코 택시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받은 사랑

모로코 도로변을 걷다 보면 수많은 택시가 나를 향해 경적을 울려댄다. 처음엔 그 쉴 틈 없이 울려대는 빵빵거림에 적응하지 못했다. 내가 뭔 연예인도 아니고, 이방인만 보이면 기사들이 그렇게 본인 택시를 타라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실제로 나는 나중에 모로코 시내에서 대부분 이 택시만을 이용하게 되었다.) 살면서 그렇게 많은 택시가 돌아다니는 나라는 처음 본 것 같다. 이름은 쁘띠 택시인데 생긴 건 그다지 쁘띠 하지 않다. 낡고 덜컹거리는 폐차 직전의 택시가 대다수로 그 정원은 기사 포함 4명이다.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이 중간중간 합승한다는 점이 그 어느 나라의 택시들과는 다르다. 그러니 모로코에서 갑자기 택시가 멈춰 길가의 다른 사람들을 태운다고 하더라도 절대 놀라지 말 것!


지역마다 쁘띠 택시의 색이 다르다


모로코에는 두 가지 종류의 택시가 있다. 하나는 그랑택시로 시외를 잇고, 나머지 하나는 쁘띠택시로 시내를 잇는다. 미터기를 다는 것이 법으로 정해져 있지만 모로칸들, 보통 키지 않거나 마음대로 가격을 부른다. 열흘 간 여행하며 실제로 미터기를 키는 정직한 기사는 단 한 명이었다. 그러나 잘 협상하면 합리적인 가격으로 원하는 곳을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가장 편리한 수단이다. (카사블랑카는 10 디르함 (=한화 천 원 정도) 정도에 끝낼 수 있었지만, 나머지 관광도시인 마라케시나 페즈는 조금 더 비싼 값을 불렀다.)


조수석의 나, 저 멀리 보이던 모스크와 미나렛


핫산 2세 모스크로 향할 때 길가에서 쁘띠 택시를 잡아 합승했다. 모로칸들과 협상할 때마다 써먹을 초롱초롱한 표정과 말투를 이미 만들어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협상은 쉽게 끝났다. 카사블랑카에서의 택시는 사실 부르는 게 값이었기 때문에, 호객이나 사기 행위 때문에 힘 쓸건 전혀 없었다. 뒷 좌석은 꽉 차있었기에 숨을 고르고 조수석에 올라탔더니 뒤에 아기의 칭얼거림이 들려왔다. 흘끗 돌아보니 모로칸 모녀가 있었고, 나는 그들을 향해 반갑다는 눈인사를 전했다.


 모로칸 아기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정말 귀엽다. 카사블랑카뿐만이 아니라 미로 같았던 메디나 골목골목을 다닐 때도, 메르주가 사막 마을에서 모래를 가지고 놀던 아이들을 만날 때도 그 귀여움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심장이 아프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싶었다. 아이들은 낯설 법한 나를 웃으며 잘 따랐고 손을 흔들어주었으며 늘 우리의 마지막은 하이파이브였다. 어떻게 이런 생명체가 있을 수 있지, 싶을 정도로 사랑스러워서 호들갑을 떨며 친구들에게 문자를 돌렸다. 당연히 모든 나라의 아이들이 귀엽겠지만 그중 제일은 모로칸인 것 같다고. (그렇다고 내가 원래 아이들에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꼬불거리는 머리, 뽀얀 피부에 푹 들어가는 보조개와 사소한 변화에도 땡그래지던 옅은 듯 진한 듯한 쌍꺼풀의 커다란 눈, 이게 바로 아랍계 아이들이다.


 그 동그랗던 눈이 어느새 반달이 되더니 아랍어로 뭐라 말하던 여아의 말을 어머니가 유심히 들으시더니 와하하 웃으셨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한적한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뒷좌석에서 나를 툭툭 건드리며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내 딸이 말하길 네가 BTS의 나라에서 왔다고 하네." 무지성 니하오를 들을 준비로 완전 무장을 하고 있던 나의 장벽이 와르르 깨지던 순간이었다. 아기는 옆에서 빵긋빵긋 웃고 있었다. 5살 즈음으로 추정되던 여아였는데, 영어로 갑자기 본인 언니의 이름은 Melek이며, 그녀는 블랙핑크를 사랑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나보다 영어를 잘하는 것 같았다. 아, 이 영광을 K-POP 아이돌들에게 바칩니다. 한국은 K-POP 가수들이 알리고 그 덕은 내가 보다니... 아이의 설렘에 한아름 맞장구 쳐주었다. 아이는 주행 중이던 택시가 무서운지 모르고 조수석의 의자를 붙잡고 영차 영차 나에게 다가왔다. 입술을 한껏 내밀고 직경 5cm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던 아기의 표정이 아직도 생각난다. 당황해하는 나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듯 어머니는 그저 너에게 뽀뽀를 해주고 싶은 거니 마음대로 하면 된다는 말을 전했다. 아기의 귀여움에 사르르 녹아버린 나는 눈을 감고 나의 볼을 대주었다. 그 낡은 택시 안에서 기사님을 포함한 모두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다정한 해프닝은 가끔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일어난다.

이전 03화 해가 질 때까지 지속된 고요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