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에서 가장 큰 사원인 핫산 2세 모스크에 다녀오다
솔직히 그 새하얀 핫산 2세 모스크 광장에 한 걸음 발을 뗄 때마다 짜릿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핫산 2세 모스크는 모로코에서 가장 크며 그 미나렛 탑이 200여 미터에 달해 세계 최대 높이를 자랑한다. 국민 성금까지 걷어가며 만들었다는 이 거대한 건축물은 눈길이 닿는 곳마다 돈냄새가 풍긴다. 누가 봐도 보란 듯이 정말 잘 지어놨다. 나는 이곳에 한참을 머물렀다. (사실, 농담 반 진담 반 카사블랑카는 핫산 2세 모스크를 봤다면 끝이다.)
북대서양 해안가에 자리 잡고 있는 핫산 2세 모스크는 오로지 두 가지 색으로 입체감을 내뿜고 있었다. 이슬람의 상징색인 청록색과 그와 어우러지는 밝은 베이지색. 두 색으로 이 모든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랗게 맑았는데, 4월 중순임에도 날씨가 변덕을 부리는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온 탓인지 그 감동은 배가 되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있을 때면 대서양의 파도가 방파제에 부딪치며 철썩 쏴-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끝이 보이지 않는 미나렛의 근처에서 갈매기들이 끼룩거리며 유유자적 날고 있었다. 공기는 맑고, 바다향은 코를 찌르고.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알 수 없는 해방감이 몰려왔다. 라마단인 탓이라 사람은 더욱 없었고, 주변엔 유럽에서 온 관광객 몇 명만이 사진을 찍기 위해 열심히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나는 해안가 쪽 하얀 사원 광장 앞에서 짠내를 맡으며 모스크를 둘러보는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첨탑 근처 사원 정문 앞으로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정장 입은 남성 무리가 걸어 나왔다. 그들은 리무진을 타고 안까지 들어와 현지인들과 부지런히 대화하고 무언가를 열심히 끄적였다. 모로코의 수도인 라바트에서 이곳 카사블랑카로 현 국왕인 모하메드 6세가 와 있다는 소식을 택시 기사에게 얼핏 들었던 것 같은데, 뭔가 중대한 사안을 결정하고 있는 듯했다. 파도소리만이 들리는 새하얀 광장에 내리쬐던 햇빛은 선글라스를 끼게 만들 수밖에 없었고, 그 차림으로 그곳에서 줄지어 나가는 정장 입은 남성들의 벤츠 행렬을 바라보고 있자니 영화 세트장에 온 것 같았다. (이 시기에 나는 드라마 미생을 재미나게 보고 있었다. 드라마 미생은 중동 지역과의 무역을 세밀하게 다룬다.)
핫산 2세 모스크가 너무 계획적으로 건축된 사원이었던 탓인지 세트장에 온 느낌을 더욱이 감출 수가 없었다. 모로코의 사원은 튀르키예의 사원들과는 다르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고, 내가 그동안 봐왔던 이슬람 사원들과는 느낌이 너무 달랐다. (모로코에서 유일하게 들어갈 수 있는 사원이 핫산 2세 모스크라고 들었는데 이것도 투어 가이드를 껴야 한다.) 튀르키예 사원은 무조건 돔 형태와 뾰족한 첨탑 몇 개를 갖추고 있었는데, 모로코는 모든 사원이 각져있었다. 그것에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솔직히 20대 초반의 무신론자 한국인 대학생이 이질감으로 뒤덮인 사원 광장에서 종교적으로 뭘 느끼겠는가. 그 안에서 혼자 걷고 있자니 19살 시절 몇 번이고 보았던 세계 여행 유튜버의 투르크메니스탄의 아슈가바트 영상이 떠올랐다. 핫산 2세 모스크는 딱 그런 계획도시의 색감과 분위기를 갖추고 있었다. 유튜브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아 심장이 두근거렸다. 무슨 매체물 중독자처럼. (사실 맞다.) 가끔 터키인 친구들이 나와 함께 어딘가로 놀러 갈 때, 'K-DRAMA MOMENTS!' 라며 좋다고 눈물을 닦는 시늉을 한 적이 있다. 그 친구들이 매체물을 통해 한국의 어떤 환상에 사로잡힌 것처럼 행동했던 것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카사블랑카에서 허구의 행복감이 실체화되는 것을 느꼈다.
모스크에서 혼자 멍 때리며 끝도 없이 펼쳐진 지평선 바다를 바라봤다. 맨날 우리나라가 중심에 놓여있는 세계 지도만 보면서 사니까 저 건너편엔 어떤 대륙이 있을지 자동반사적으로 튀어나오진 않았다. 머릿속 종이 지도를 말았더니 대서양을 끼고 건너편엔 아메리카 대륙이 나왔다. 아, 그래서 여기에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캐나다의 퀘벡 사람들도 자주 오는 거구나. 온갖 잡다한 생각을 하고 있던 참에 누군가가 뒤에서 영어로 말을 걸었다. "혹시 저 사진 좀 찍어줄 수 있어요?" 고개를 돌렸더니 중앙아시아계로 추정되는 여행객 한 분이 웃으면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열심히 몇 장 찍어주고 난 후 카메라를 돌려주려던 참이었는데 그녀는 날 보내주려는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내가 혼자 여행하는 것 같아 보이는데, 사진 찍을 때의 그 어려움을 안다며 모스크 앞에 한 번 서보라는 제안을 했다. 애초에 풍경 사진 말고는 관심 없는데... 마지못해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정말 열심히 찍어주시길래 몇 번 더 포즈를 뽐냈다. 그러고 나서는 기다렸다는 듯 우리의 스몰 토크가 시작됐다. E의 국적은 러시아였고, 나는 함부로 '-스탄' 국가에서 오지 않았냐고 물어보지 않은 나 자신을 속으로 칭찬했다. 인도에서 몇 년을 일하고 있었으며, 모로코로 여행온 지는 어언 한 달로 카사블랑카가 그녀의 마지막 종착지였다. 나는 이때 한 시간 정도 E와 영어로 대화했다. 솔직히 무슨 대화를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강인하고 모험정신이 가득한 그녀의 생각과 삶에 올라타 열심히 말한 것만 기억에 남는다. 기숙사에서 늘 이란 친구들과 영어로 대화했던 것이 나름 어딘가에서 쓰이긴 쓰이는구나,라고 생각하며. 홀로 하는 자유 여행에서만 찾을 수 있는 묘미라고 생각할 무렵 마지막에 E에게 사실 난 터키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갑자기 E가 눈을 크게 뜨며 본인은 타타르계 러시아인이라며 신나게 터키어로 말을 이어나가는 것이 아닌가. 튀르크어족인 타타르인들에게 터키어는 남들이 배우기에 훨씬 수월할터, 우리는 그 인연을 한참 신기해했다.
한국인이 그렇게나 기피한다는 여행지 3개국 : 인도, 모로코, 이집트를 다 다녀왔던 E와의 인연은 이후에도 끈끈해졌다. 그녀는 여행 도중 문제 상황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나에게도 추후 인스타그램 DM으로 몇 가지를 가르쳐주었다. 그건 정말 험난했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현실적인 조언들이었다. 나는 이후에도 모로코에서 국적불문 이런 여행객을 몇 명 만났다. 그들은 모두 용감했고, 상황을 휘어잡아 판도를 뒤집는 재치를 갖추고 있었다. 모로코 여행 내내 그들의 자신감이 무척이나 탐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