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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 May 02. 2023

모로칸 택시 기사들과 함께한 저녁

나눔 정신이 깃든 이프타르


나는 모로코의 뉴욕이라는 카사블랑카에서 동행자 Y를 처음 만났다. 혹시 몰라 모로코 여행 계획을 두리뭉실 SNS에 오픈채팅 링크와 함께 올려두었는데, Y가 구글링을 하다가 내 글을 발견했다고 한다. 튀르키예 앙카라에 있을 때부터 한국 서울에 있는 Y와 여행 정보를 주고받았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우리가 아프리카 대륙으로 떠나는 여자 '혼행자'들이었다는 것, 그뿐이었다. 그녀는 퇴사 후 모로코 한 달 살이를 계획하고 있었고, 첫날부터 카우치 서핑*으로 숙박을 해결한다고 했다. 만나기 전부터 벌써 여행 고수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카우치 서핑 : 소파를 뜻하는 카우치와 파도를 타다는 서핑의 합성어로, 숙박 혹은 가이드까지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는 여행자들을 위한 비영리 커뮤니티이다. 애초에 현지인들과 소통하며 교류를 쌓는 것이 목표기에 돈을 받지 않는다.


Y는 내가 카사블랑카로 오기 전 날 그곳에 도착했다. 하루동안 카우치 서핑의 호스트와 함께 도시를 둘러봤으며, 이런저런 재미난 경험을 미리 쌓아둔 상태였다. 카사블랑카행 비행기를 타기 직전 Y가 카톡으로 보내둔 소소한 일상을 다시 읽었다. 공항에 들어설 때부터 아랍어의 향연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일상 몇 마디를 읽는 것 자체만으로도 겁으로 사그라든 기대가 다시 피어났다.


곳곳의 사원들 (터키랑은 정말 느낌이 달랐다!)
정말 오랜만에 보게 된 스벅 말차 프라푸치노... (터키엔 없다.)

 그렇게 몇 번의 엇갈림의 고비를 넘기다 거리에서 Y를 만났다. Y는 국악을 전공하고 해금을 하는 사람이었다. 인생에서 국악인은 처음이었는데, 그 만남이 모로코에서 성사되니 더욱 신기했다. 해금 연주자라 함은 머릿속에서 차분하고 조용히 악기를 키는 사람을 연상케 했는데 눈앞엔 정반대의 느낌을 가진, 용기 넘치는 여행자가 있었다. 나는 만난 지 몇 시간 만에 시크한 듯 재미난 Y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녀와 함께 돌아본 카사블랑카의 시내 역시 내가 생각했던 모로코와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걸음을 뗄 때마다 눈에 보이는 족족 모든 것이 예상 밖을 벗어났다. "Y님, 제가 생각한 모로코가 아닌데요..."라는 이야기만 반복했다. 내가 생각한 모로코는 무엇이었나? 나 역시 미디어가 만들어낸 아프리카 대륙의 편견에 어쩌면 잠식되어 있던 것이 아닐까? 모로코 하면 진흙을 말려 만든 황토색 집들과 야자수 숲의 향연, 그리고 더위를 식히기 위해 거리에 앉아 부채질을 하는 현지인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는데... 정보력이 부족했던 탓이었나. ‘하얀 집'을 뜻하는 도시 이름에 걸맞게 모든 건물들은 밝았고 반사되는 건물 빛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아온 탓에 모든 건물들은 유럽 양식이었고 더위를 식히기 위해 들어간 백화점에선 부내가 폴폴 나는 몇 사람들과 터키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한국 간식들이 즐비해있었다.


알라 후 아크바르 한 마디를 영상에 담았다.

거리는 라마단으로 아무도 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감이 안 잡혔다. 도시의 정취는 흠뻑 느낄 수 있었지만 로컬과의 교류를 중시하는 내겐 조금 실망이었다.) 금식 시간이 끝나기 전까진 그 어떤 상점도 문을 열지 않았고, 덕분에 더욱 내가 어디에 와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대도시마다 있다는 메디나 마을도 상점마다 문을 꼭 걸어 잠그고 있었다. 왜 비행기값이 이 기간에만 저렴한 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전통 음식을 꼭 먹고 싶었다. 터덜터덜 항구를 따라 걸었고, 때마침 4번째 아잔(이슬람 예배 시간을 알리는 소리)이 울려 퍼졌다. 네모난 미나렛 탑 스피커 옆을 걷고 있었던 탓에 아잔을 울리는 '알라 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가 더 큼직하고 또렷하게 들렸다. 튀르키예식 아잔에 익숙했던 나는 당연히 노래처럼 흥얼거리는 아잔을 기대했는데, 그것보다 훠얼씬 딱딱하고 정통적이라 신기했다. 누군가가 아주 또박또박 신성하게 읊조리는 느낌. 그때 하늘은 파스텔칠을 해둔 것처럼 연보라색과 분홍색으로 저물고 있었다.


  유튜브 보면 별 일 다 일어나던데, 쩝... 아무 일도 안 일어나네. 그 사실을 흥미로워하며 Y와 계속 걸었다. 목적지였던 식당 앞에 다다를 때가 7시 30분경이었다. 한적한 길바닥에선 모로칸 5-6명이 이프타르 저녁을 즐기기 위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몇은 빨간 쁘띠 택시에서 무언가를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었고, 나는 그들이 택시 기사임을 알아챘다. Y와 나는 기사 아저씨들에게 저녁을 맛있게 먹으라는 눈인사를 전했다. 그러자 그들이 행복한 웃음을 머금고 몇 가지 음식들을 건네주시려는 게 아닌가. 무슬림 친구들에게 몇 번 초대받아 즐겼던 이프타르에 익숙해 이들이 이 시기에 나눔 정신을 얼마나 투철하게 여기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어 망설이고 있었는데, Y는 어느새 자리를 잡고 앉아 그들이 건네준 모로칸식 피자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겁나 맛있어요 빨리 먹어봐요."라는 말과 함께.


 정신 차려보니 나 역시 두 손 한가득 당으로 절여진 과자와 프랑스식 패스츄리를 들고 이프타르를 즐기고 있었다. Y와 나는 그 유명하다는 식당에서 저녁 먹는 것을 포기했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 식당은 한 달 전에 예약을 했어야만 갈 수 있다고 하더라. 일련의 모든 우연이 행운으로 작동한 느낌...) 끝없이 제공되는 호의에 배가 터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무언의 시그널을 주고받으며 이곳에서 끼니를 해결하기로 결심했다. 마음 놓고 맛있게 먹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이 복스러웠는지 기사님들은 본인들의 의자까지 내주시며 편하게 앉으라고 했다. 내가 낮에 그들의 택시를 탔다면 흥정에 흥정의 연속이었을 텐데, 퍽 재밌었다. 언어 한 마디 통하지도 않는데 그 자리에서 저녁을 무료로 해결했다는 점까지 헛웃음도 나왔다. 그 속에서 나눈 짧은 몇 마디와 환대에서 모로칸들의 다정함을 느낄 수 있었다.


Y님과 기사님들과 브이!

 일시적일지라도 여행에서만 가능한 이런 다정다감한 교류가 좋다. 서로 간 신뢰가 만들어내는 어떤 무언가가 쌓이고 쌓여 충만한 하루를 만든다. 저녁을 먹고 난 이후의 길거리는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저녁밥으로 다시 채워진 로컬들의 활기가 거리 곳곳을 감쌌다. 나는 이방인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그 시선 시선마다 “살람!(=안녕하세요!)”을 외쳤고, 대부분은 손을 크게 흔들며 영어로 이렇게 말했다. “웰컴 투 모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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