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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 May 08. 2023

먼 타지에서 떠올린 국력

만약 우리나라의 간판 아래 일본어가 적혀있다면

마라케시 쇼핑몰
마라케시의 극장

마라케시는 모로코의 다른 도시들과 느낌이 달랐다. 금식월 라마단이라고 거리가 텅텅 비어있지 않았다. 선글라스를 낀 북미 사람들과 유럽인으로 북적였고, 그들은 40도에 육박하는 더위에 매우 짧은 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 찜통 속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연신 부채질을 하며 생각했다. 아, 그냥 짧은 옷 가지고 올걸 그랬나. 모로코로 오기 전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원피스를 고심 끝에 구매했었다. 여행 전 날 원피스를 캐리어에 넣다가 문득 그곳이 이슬람 국가임을 자각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법이 있지 않나 곱씹으며 짐을 싸다 홧김에 빼버렸던 원피스가 아른거렸다. 그런데 마라케시는 카사블랑카와는 딴판으로 이슬람이고 뭐고 그냥 관광도시였다. 종교적 색채가 무조건적으로 짙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나라 역시 도시마다 주는 느낌이 달랐다.


아랍어 아래 적혀있는 프랑스어 “마라케시 역”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제마 엘프나 광장

 특히 관광하러 온 프랑스인이 많았다. 현지인들은 능숙하게 프랑스어를 했다. 이건 이전에 갔던 지역인 카사블랑카에서도 아니, 모로코 전 지역에서 통용되는 말이었다. 프랑스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사방에서 프랑스인들의 부드러운 발음이 귓가로 흘러들어왔다. 택시 기사들과 대화를 할 때면 분명 아랍어인 '앗살라무 알라이쿰(=안녕하세요)'로 시작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면 연신 프랑스어로 '위(=네)'와 '메르시(=감사합니다)'를 외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전에 아프리카 대륙의 국경선들이 초급 단계 수준의 퍼즐처럼 찍 그어져 있는 게 유럽 국가들의 식민 지배를 받아서라고 얼핏 들었던 적이 있다. 그 때문인가 모로코는 기차 철도역에서도 식당 내 메뉴판에서도, 아랍어 아래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가 적혀있었다. (그 때문에 프랑스어도 아랍어도 모르는 나는 홀로 다닐 때 애를 좀 많이 먹었고 대충 감으로 이해했다.)


 거리의 간판들 역시 적어도 두 개의 언어로 적혀있었다. 아랍어와 프랑스어. 어떨 땐 아랍어와 베르베르어. 조금 큰 건물이다 싶으면 세 개의 언어가 한 번에 적혀있어 영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랍어 자체도 우리끼리 흔히 말하는 '지렁이 글씨'인데 베르베르어 역시 상형문자여서 한문시간에 배운 갑골 문자를 연상케 했다. 그러니까 모로코에 사는 사막 유목민인 베르베르인 같은 경우 베르베르어를 기본으로 할 줄 알며, 모로코에 거주하니 아랍어도 능숙하고 프랑스어도 이해하는 셈이다. 유럽으로부터 유입되는 관광객도 많으니 영어를 잘하는 사람도 많다. 처음에는 영어 제외 3개 국어를 자연스럽게 할 줄 안다는 게 얼핏 부러웠다. 그런데 점차 여행을 하다 보니 유럽 식민 지배의 흔적이 묻어나는 건축물들과 문화를 엿볼 수 있었고, 내 부러움은 이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간판을 보시라

  이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아직도 모로코는 프랑스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고 있다. 그만큼 양국의 교류는 굉장히 원활한 셈이다. 아직도 프랑스에서 모로코로 많은 관광객이 오고 가며, 그들과 프랑스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로칸들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온갖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역시 일본으로부터 식민 지배를 받았던 상처 깊은 과거가 있으니까, 그리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한일 문제들로 여전히 나라가 시끌벅적하니까. 우리가 겪었던 식민 지배와는 느낌이 다른 식민 지배인 건가? 그런 게 있나? 왜 모로코 국왕인 무함마드 6세는 자국민들의 프랑스 교육을 의무화할 수밖에 없었나? 걷잡을 수 없이 프랑스가 그들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국가가 되어버린 걸까?


 열흘밖에 없었던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았기에 더 쉽게 단언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육안으로는 양국이 식민지 - 피식민지 관계였다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굉장히 우호적이었다. 분명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 때 모로코가 스페인을 꺾고 4강에 올라갔을 때, 그들의 또 다른 식민 지배지였던 스페인을 꺾었다고 환희에 넘쳐 기뻐했다. 또한 4강으로 올라가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졌을 때도, 유럽 곳곳에서 모로칸의 넘치는 분노가 거리 곳곳을 혼란스럽게 하는 장면을 뉴스에서 보았다. 찾아보니 종교와 역사적인 이유로 갈등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았다. 모로코의 관광사업이 더욱 활성화되면서 내후년부턴 아랍어 밑에 번역되어 있던 프랑스어를 영어로 바꿀 예정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는 모로코를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로컬 음식점에서 프랑스어밖에 적혀있지 않은 메뉴판을 봐야 했다. 발음이 비슷한 영단어를 떠올려 느낌으로 때려 맞춰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모로칸들에겐 분명 아랍어가 자국어일 텐데, 이 상태가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어 당연시된 걸까. 우크라이나 사람들 역시 우크라이나어가 아닌 러시아어를 더 많이 쓴단다. 70년이 넘도록 소련 체제에 놓여있었던 역사 때문이라고 했다. 식민 지배의 영향으로 우리말로 적힌 매 간판 아래 일본어가 적혀있다고 상상해 보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런 이유로 일상 속에서 가족들과 친구들과 일본어로 소통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양한 언어가 적혀있는 빼곡한 모로코 간판을 보며 이런 생각들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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