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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 Apr 26. 2023

사막 버킷리스트를 달성하며

2박 3일의 모로코 사하라 사막 투어


사막 유목민인 베르베르인들처럼 긴 스카프를 터번처럼 머리에 묶고 눈을 제외한 모든 곳을 가렸다. 바람이 가져온 가는 모래 입자들이 우리 몸의 구석구석을 침투하는 것을 최대한 방지하기 위하여. 그렇게 나는 알제리 국경선의 사하라 사막 오아시스까지 낙타를 타고 끝없이 이동했다. 이동하는 내내 본 주변 풍경이라곤 고요함 속 모래 언덕과 푸른 하늘뿐이었는데, 단순히 그곳을 두 단어로만 묘사하긴 아까웠다. 사하라 사막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컴퓨터 그림판을 켜놓고 마우스로 능선 하나를 그린 뒤 위에는 쨍한 하늘색을, 아래는 오렌지빛 황금색을 머금은 페인트통으로 칠해둔 것처럼 말이다. 클릭 세 번에 그림판으로 사하라 사막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끔 몽글한 구름이 우리 위를 지나가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허허벌판인 사막을 따라 베이지색부터 어두운 갈색으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것마저도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라디언트 툴을 이용해 그라데이션을 표현한 느낌이었달까. 가장 자연적으로 형성된 풍경일 사막이 이렇게나 단순하고 인위적으로 보이다니, 그만큼 현실감이라곤 온데간데 찾아볼 수 없었다.


라면 스프같았던 모래입자
좋아하는 돌맹이 인형도 가져갔다 ㅎㅎㅎ


 "낙타 마사지 끝. 낙타 힘들어."라는 능숙한 한국어를 선보인 한 베르베르인이 사막 선셋 포인트 앞에서 모든 낙타를 멈춰 세웠다. 어트랙션마냥 쉽지 않았던 첫 번째 낙타를 잠재우고 일몰에 반사된 황금빛 모래에 발을 내디뎠다. 푹 소리와 함께 두 발이 모래 언덕에 파묻혔다. 운동화를 신고 있었던 탓에 틈새로 가는 모래 입자가 스며들어오는 것이 느껴지자 재빠르게 양말까지 벗어던졌다. 한 걸음걸음을 걸을 때마다 모래가 밟힌다는 느낌보다는 주르륵 힘없이 주변으로 흘러내린다는 느낌이었는데, 이 텍스처가 영원히 남는 물자국 같아 보이기도 했다. 보고 느끼는 모든게 새로운 것 투성이었다.


낙타 눈에 비친 나! 눈이 엄청나게 맑고 촉촉했다. 아무래도 모래 입자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였겠지?


 투어에서 만난 이들은 내게 체질인 것 같다는 농담을 건넬 만큼 낙타 타는 것이 무척 재밌었다. (낙타야 미안해) 사막의 풍경을 감상할 때는 가장 좋아하는 영화 OST 플레이리스트를 틀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감상하고자 할 때면 흥이 나는 힙합 노래를 틀었다. 고요한 자연 속에선 힙합이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낙타의 움직임에 맞춰 덜거덕거리던 우리의 몸짓과 얼마나 잘 어울리던지... 오아시스 앞에서 휴식을 취한 뒤 이번엔 또다시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홀로 알제리 국경선의 사하라를 누비기로 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거대한 구름 아래 드리워진 사막 그늘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양 옆 수직으로 펼쳐진 세상을 살피기도 했다. 물론 눈, 코, 입으로 사정없이 들어오던 모래입자들은 덤이었다. 그것마저도 모조리 낭만의 장치로 취급해 버릴 수 있을 만큼 행복했다.



 당연히 덥긴 더웠다. 4월이었음에도 사우나에 온 것처럼 뜨거웠다. 그럴 때면 오아시스 근처의 물탱크를 틀어 머리를 한참 적시고 모래 바람에 몸을 맡겼다. 샤워하고 나왔을 때 느껴지는 그 시원함과 똑같았고, 쾌감은 두 배 이상이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아보면 언덕과 언덕 사이에 파인 어떤 공간 한복판에 생텍쥐페리가 자신의 비행기를 고치고 있을 것 같았다. 어린 왕자의 호기심 어린 질문에 다 답을 해주기엔 쉽지 않았을 날씨 같다는 상상도 하며 말이다.



 2박 3일간 우리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낙타를 몰고 저녁엔 전통 악기로 연주까지 해주었던 베르베르인 효신. 다시 베이스캠프로 돌아가려고 준비를 할 무렵 오아시스 저 멀리서 매트를 깔고 메카를 향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멀찍이서만 보아도 느껴지던 그의 신실함에 기분이 묘했다. 사실 이전에 맛있는 밥을 대접해 줄 무렵, 너무 어려 보이는 나이에 실례는 아닐까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혹시 몇 살이냐고. 19살이라는 대답이 정말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라마단 기간에 하루종일 금식한 후 가는 모래 입자를 푹푹 밟으며 낙타를 모는 삶은 어떤 느낌일까. 한국인들에겐 이색적인 명소로만, 인생의 버킷리스트로만 남을 이 공간이 누군가에겐 생존을 위해 매일같이 해내는 일이었음을 잊고 싶지 않았다. 이 날은 금식월이 끝나는 라마단 마지막 날이었다. 이프타르를 앞두고 베이스캠프로 돌아가는 길 내내 효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섣부르게 효신의 삶을 판단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저 지쳐 보이는 뒷모습을 바라봤다. 이방인들을 맞이하며 자신의 문화를 널리 알리는 삶을 살아가는 효신에게 행복하고 따스한 일들이 가득하기를 빌며 그렇게 2박 3일의 사막투어의 일정은 마무리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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