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이 닿는 대로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 같던 순간, 새벽 세 시의 사하라 사막이다. 숨이 막힐 정도로 차갑고 적막한 공기를 뚫고 우리는 아주 두꺼운 모로칸식 전통 매트를 끌고 능선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투어에서 만난 우리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 별이 가장 잘 보일 것만 같았던 곳에 자리를 잡는 것이었다. 필요한 것은 떨어진 온도에 딱딱해진 모래를 밟을 튼튼한 두 발과 반짝이는 두 눈뿐. 베이스캠프의 밝은 빛들이 점차 희미해져 갈 즈음 우리는 매트를 털썩, 내려놓았다.
밤 열두 시 즈음에 보았던 선명한 북두칠성은 어느새 왼쪽 끄트머리를 향해 자리를 잡고 이동하고 있었다. 이슬람력을 따르는 라마단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달은 보이지 않았다. 밝은 달은 별을 감상하는데 방해가 된다던데, 시기적절하게 잘 온 것 같아 괜스레 뿌듯했다. 한 바퀴를 휘익 돌았다. 별자리는 지평선 바로 위에서부터 시작됐다. 누군가가 붓에 하얀색 페인트를 잔뜩 머금은 뒤 검은색 유화 바탕에 후드득, 흩뿌려놓은 것만 같은 세상이었다. 비현실적으로 별이 쏟아졌다. 너무 많아 침침해진 눈이 별들을 향한 초점을 잃어버리게 될 정도였으니. 아주 오랫동안 하나의 별을 집중해 보고 있어야만 그 주변으로 선명하게 별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어떤 별들은 커졌다가 작아졌다가를 반복한다. 밝게 빛나다가도 다시 희미해진다. 각각의 별은 자기만의 방식대로 그렇게 빛을 내며 제 자리를 지킨다. 아주 조그마한 별 하나엔 어린 왕자가 허영심 가득한 장미에 물을 주고 활화산을 청소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별똥별은 아주 밝게 빛나던 별 주변을 유심히 보고 있으면 눈 깜짝할 시간에 한 번씩 떨어졌다. 직선을 그으며 0.2초 만에 사라지기도 했고, 어떤 유성은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튀겨나가듯이 옮겨가기도 했다.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이 소리를 지르며 별똥별이 지나간 흔적을 가리키면 모두가 일제히 같은 곳을 응시했다. 그러나 이미 사라진 지 오래. 사하라 사막에 투어를 온 한국인 모두가 동심으로 돌아가 오기를 갖고 유성을 찾아 소원을 빌기 바빴다.
둘째 날의 별밤은 물리학도 H와 퇴사한 공대생 출신 Y와 함께했다. 별이 계속해서 빛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행성이 폭발하고 있어, 그게 태양에 반사돼 우리 두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태양계에서 가장 큰 별인 태양을 생각해 보면 그 원리의 이해가 훨씬 수월했다. 이미 죽어버린 것도 있는데, 빛의 속도가 달라 우리 눈에 아직까지도 보이는 걸 수 있다고. 우리에게 탄식을 자아내는 밤하늘에 수놓은 별들이 사실은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라니. 기분이 묘했다.
외계인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이제는 상황이 적합해야만 진지하게나마 우주 속 외계인 이야기를 꺼내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H는 계속해서 팽창하고 있는 이 드넓은 우주에 외계인이 없을 리가 없다는 말을 덧붙이며, 그게 어떤 형상을 하고 있을지는 모른다고 전했다. 외계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오글거린다고 느껴져 피식 웃음이 나왔는데, 천체물리학을 공부했었던 H는 사뭇 진지했다. 이미 태양계를 벗어난 보이저호엔 혹시라도 다른 생명체와 소통할 수 있게 몇십 개의 언어를 실어두었다며. 미지의 영역을 자세히 얘기하면 할수록 무언가 실체화되는 느낌이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런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내 곧 영화 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애정하는 나는 다중우주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혹시 저 드넓은 우주가 설마 다른 세상에 또 존재하고, 그곳에 또 다른 내가 있을 수도 있는 거냐고. 이건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이론 아니었냐고. 그러나 다중우주 역시 실제로 존재하는 이론이며 있을 수도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곳에서의 나는 또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 보며 드넓은 우주에 대한 열띤 토론이 끝난 후 적막함이 다시 찾아왔다.
푸른 은하수와 하얀 별들이 흩뿌려진 아주 거대한 돔 형태의 천장 아래 놓여있다고 느낀 내가 그 차가운 공기를 뚫고 입을 뗐다. 낮에도 사하라 사막 한복판에서 느끼지 못했던 무언가가 지금은 나를 꽉 누르는 느낌이 들어.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덜컥 나를 겁나게 한다는 말을 끝맺기도 전에 H가 덧붙였다. 나의 더듬거리는 말의 의도를 눈치챘다는 듯이. “그래서 천체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려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많아.” 광대한 자연 아래 놓여 쏟아지는 유성우 속에 한없이 작아지던 나는 이내 곧 초라함을 느꼈던 것일까. 그 이틀간 과학적 상식이 적절히 가미된 대화에는 아무런 정답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사하라 사막의 차가운 모래바람을 타고 흘러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