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

by 조란마


눈물을 글썽이며 볼과 볼을 맞대어 몇 번을 인사를 하고, 공립 까까벨로스 알베르게의 문을 나선다.

찰나, 이 길 위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



까미노 위엔 마을마다 다양한 알베르게가 존재한다. 특히 도네이션으로 운영하는 공립 알베르게에는 각국에서 온 Hospitalero 오스피탈네로들이 2주 동안 알베르게를 책임지고, 순례자들을 보살피며 함께 시간을 공유한다. 그들은 이미 산티아고 길을 여러 번 걸었던 선배이자, 이 길 위에서 무언가를 얻었던 경험의 소유자들이다. 봉사를 하면서 어떤 이의 길을 같이 이야기하며 자신들의 길을 추억하기도 하고, 조언을 하며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첫인사를 하고, 여권과 순례자여권을 차례로 보여주면 오늘 하루 머물 곳이 생긴다. 그리고 그 순간 서로 알 수 있다. 마음이 통하는 사이가 될지 아닐지. 첫눈에 반하는 것처럼 체크인을 하는 그 잠깐의 시간 동안 말이다. 혼자 걷는 나에겐 이제 새 친구가 생겼다. 잠을 자는 8시간을 빼면, 약 8시간 동안 그리고 다음날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는 약 30여분의 시간을 더해 8시간 반 동안의 친구.



산티아고 길의 특성상 서로 마음을 활짝 열기만 하면 짧지만 강렬하게 마음이 오고 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순간들이 참 뭉클하고, 따뜻하다. 그래서 안 걸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걸은 사람은 없다고들 하는가 보다. 빨래를 할 때도 계속 이야기를 주고받고, 새로 온 순례자들의 스페인어나 영어를 통역하기도 하다가 과거의 순례 이야기에 몰입한 그들의 추억담을 경청한다. 그리고 그들을 도와 알베르게의 허드렛일을 자처하며 거들기도 한다. 또 그들의 저녁식사에 초대를 받아 지역 양조장에서 만든 와인을 마시며 맛에 대해 품평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웃음과 수다가 이어지고 나면 시간은 10시를 향해간다. 뭐가 그리 아쉬운지 잘 자라는 인사를 여러 번 나누고서야 하루를 마무리한다.



800Km. 오로지 두 발로 걸으며,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 우리는 태어나 모두 각자만의 길을 걷는다. 어느 곳을 어떻게 얼마나 걷게 될지 처음에는 알 수 없지만, 그 길의 언제쯤엔 알 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다가 다시 길을 잃기도 하고, 그 길 위에서 평화를 맛보다가 다시 헤매기도 한다. 달콤한 사랑을 찾고, 이내 사랑을 만나 아름다운 사랑을 하다가 쓰린 이별을 경험하기도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커다란 인생의 아주 작은 부분일지 몰라도 이곳에서 만나는 만남의 밀도는 그 어느 순간보다 높다. 그 찰나의 끈적임이 우리를 다시 이 길 위로 데려다 놓는 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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