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산을 넘는다. 이렇게 많고 거대한 산들을 넘었으니, 한국에 돌아가 어디라도 걷지 않으면 허전할 것 같다. 그래서 ‘까미노 블루’라는 말이 나왔나 보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 이후 이 길을 매일 추억하며, 결국엔 우울증이 생긴다는 엄청난 후일담. 그도 그럴 것이 El Burgo Ranero에서 만난 70세 이탈리아인 마르티나는 벌써 6번째 산티아고 프랑스길을 걷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길 위에서는 너무나 행복한데,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바로 슬퍼지고, 우울해진다고 했다. 그래서 또 오고, 다시 걷고, 그러다가 알베르게에서 봉사도 하고를 반복한다고 하면서 예전에 찍었던 사진들을 보여주며 더없이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또한 Grañón에서 만났던 전직 영국 공군의 조종사 에릭은 28번이나 이 길을 걷고 있었는데 그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한치의 망설임 없이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여러 동기가 있겠지만, 누구든 필요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이곳에 왔을 테다. 같은 길을 걷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결국 목적지가 정해져 있고, 그 과정 속에서 이어지는 사람과의 소통이 동질감을 형성한다. 처음 어디서부터 시작했으며, 여기에 온 이유는 무엇인지, 내일은 어디까지 가는지. 그간의 경험담과 무엇을 느끼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 서로가 가지고 있는 이야깃거리들을 끊임없이 주고받는다. 그러다 각자 길을 걷다가 잠시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를 반복한다.
오늘 힘겹게 오른 산의 정상에선 호세 안토니오가 환한 미소로 반겨주었다. 혼자서 주문을 받고 주방에 들어가 주문한 음식을 만들다가 다시 바 bar로 와서 카페 콘 레체를 만들고, 출입문이 닳도록 들어오는 순례자에게 또다시 반갑게 인사를 한다. 무엇을 먹고 싶냐는 물음에 “una tostada con tomate y jamón, por favor”라고 말한다.
약하게 구운 빵 위에 곱게 간 토마토를 바르고, 소금을 살짝 뿌려 간을 한다. 건조한 돼지 뒷다리를 냉장고에서 꺼내 들고 얇게 썰어 그 위에 살포시 올리고, 올리브 오일을 두르면 완성. 이 맛을 말해 무엇하랴? 맛있다!!
계산을 하려고 10여분을 기다린다. 줄도 참 길다. 맛있었다고 엄지 척을 하고 보니 바 bar 위에 커다란 또르띠야가 놓여있다. 아까는 없었는데 그새 만들었나 보다. 알고 보니 호세는 또르띠야 (스페인에서 주로 간편하게 먹는, 감자와 달걀을 넣어 구운 음식) 장인이었다. 그는 나에게 작게 한 조각을 잘라 건넨다. 와우! 크고 두꺼우면서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 내친김에 주방으로 쪼르륵 달려가 그에게 또르띠야 비법을 전수받는다.
호세는 만드는 방법과 과정을 하나씩 설명해 주었다. 이 또르띠야에도 그의 손 맛이 깃들어 있겠지? 바쁜 와중에도 오는 순례자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네며, 또르띠야를 만드는 전설의 비법뿐 만 아니라 웃음과 유머를 잃지 않았던 그에게서 나는 또 배웠다. 그가 건넨 밝은 미소와 여유. 팬에 넘치도록 가득 담은 재료들처럼 풍족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만들어진 또르띠야로 순례자들의 순간을 채워주는 그. 역시 까미노 데 산티아고에는 ‘사람’ 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