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100Km가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나왔다. 이제 정성을 다해 걸어가면 5일 또는 6일 후면 모두가 원하는 그 목적지에 당도하게 된다. 그동안 만났던 길 위의 친구들은 이미 도착하여 콤포스텔라 성당 앞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내왔으며, 순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거나 또는 다른 곳을 여행 중이기도 하다.
머무는 여행을 하고 있는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마음을 움직이는 마을에선 걸음을 멈추고 머물렀고, 잠시 그곳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했다. 나의 주 무대는 공원이나 광장이었다. 그동안 먹고 싶었던 것들을 잔뜩 사서 나무 그늘아래 앉아 놀거나 카페테라스에 앉아서 동네 주민들이 그러하듯 낮부터 맥주나 와인을 마시며 그저 앉아있기. 그러다 동네 어르신들처럼 느린 걸음으로 주변을 산책하며 이 순간들을 마음 한 곳에 담는 순례자로 지냈다.
그런 나는 요 며칠 꽤 지쳐있다. 길 위의 삶이 그렇듯 매일 바뀌는 알베르게에서는 숙면을 기대할 수 없고,
긴 여정으로 인한 피로도 분명 누적되었을 것이다. 매일을 즐겁게 웃으며 걷지만 가끔은 긴 침묵과 함께 걸을 때도 있다. 그때는 ‘부엔 까미노’라는 말도 나오지 않고 그저 조용히 혼자만의 걸음에만 충실하게 된다.
갈리시아 지방으로 넘어오니 확연히 달라진 풍경에 기뻐하다가도 이상하게 침착해진 나를 발견했다. 모든 풍경이 그렇게도 아름답고 소중했는데 작은 감흥으로 일관하다 어느 날엔 무심한 듯 지나치고 있는 나를 보았다.
그런 날은 전 날 잠을 못 이루었거나, 까미노의 최대의 적 ‘베드버그’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당한 날이었다.
그리고 까미노 위의 사람들에게도 관심이 점점 없어지는 걸 깨달았다. 매일 새로운 것들을 보고 듣고 만나지만 여행이 길어지면 찾아오는 권태기를 겪는지도 모를 일이다. 과거의 여행에서도 그런 때는 여행이 일상보다 무료하고, 지치고, 몸도 계속 아팠었는데. 하지만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몸이 아프거나 지쳐서 여행이 무료해지는 시기를 맞이하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사리아 (Sarria)부터는 갑자기 많아진 사람들에 잠시 심술이 나기도 했다. 여유가 소음으로 바뀌었고, 생장(Saint Jean)부터 고귀하게 걸어오고 있던 이 길이 단체로 걷는 학생들과 휴가철을 맞아 삼삼오오 시끌벅적 걷는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한 순간에 달라져버렸다. 혼자 걷는 사람보다 짝을 이루어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사람들이 많아졌던 것이 부러웠던 걸까? 800Km를 처음부터 자신의 배낭을 메고 숭고하게 걸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유치한 마음의 표출에 스스로도 웃겼다. 이 길은 나만의 길도 아니고, 혼자 걷기를 선택한 건 나였는데. 무엇이 그리 나를 지치게 했을까?
하지만 몸도 생각도 마음도 다잡고 이 시간을 극복하기 위해서 또다시 걷는다. 종착지의 중요성보다 길 위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에 감사하며 또 걷는다. 이 길이 내 삶의 과정임을 알기에 두려움 없이 건강하게 오늘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