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by 조란마


모든 길의 종착지, 모든 이들이 마침표를 찍는 곳에 나 또한 도착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산티아고의 고결한 마음은 수 세기가 지나도록 이어져, 오늘도 수많은 순례자들을 이곳에 다다르게 했다. 종교와 이념을 넘어선 이 길의 목적지 콤포스텔라 대성당 앞의 풍경은 그 여느 영화만큼 감동적이다.


부상 투혼을 발휘한 80세 노장의 얼굴엔 만감이 교차하고, 서로 부둥켜안으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커다란 함성과 노래를 부르며 단체로 성당 앞으로 힘차게 입장하는 학생들도 있다. 자전거를 타고 온 3명의 청년들은 자전거를 높이 들어 올려 기쁨의 포즈를 취하고, 중년의 순레자는 배낭을 어깨에 짊어지고 큰 소리를 지른다. 아마 이들 중엔 처음으로 이 길을 걸었던 이들도 있을 것이고, 여러 번 걸은 이들은 이 광장이 익숙할 테지.


나의 입장은 담담한 마음이었고, 평온했다. 주마등처럼 지나온 길이 생각나지는 않았다. 어쩌면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졌을까? 50일간을 하루도 빠짐없이 걷고 또 걷고 그리고 다시 걷고. 그 길들이 아득하게 저 성당 뒤편에서 미소 짓고 있었다. 어디서 시작했건, 어떤 모습으로 걸었던 그건 중요치 않았다. 지금 이곳에 서 있는 기쁨 만으로도 한없이 행복한 사람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이곳을 떠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나 역시 성당을 바라보고 앉아서 이 순간을 만끽하고 있으니 말이다.



길의 처음엔 새로움에 적응하느라 바빴다. 나도 나의 체력을 가늠할 수 없었기에 얼마나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마구 걸었다. 당연히 다리와 발은 아프다 힘들다며 아우성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새로운 모든 것들을 보고 음미하는 감정이 피로한 몸의 감각보다 한수 위였다. 매일이 놀랍고 감사한 마음에 지치는 줄도 모르고 아름다움을 즐겼다.


몸이 적응될 때쯤 날씨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밤에는 무더위에 잠을 설치고, 낮에는 강렬한 태양의 순리를 따르며 힘겹게 걸어야 했다. 뜨거운 태양이 무서워 이른 새벽에 길을 떠나기도 했지만, 작디작은 순례자는 태양의 힘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렇게 길에 모든 걸 맡기고 걷다 보니 내가 좋아했던 나의 모습도 나오고, 그 이상의 아름다운 내 영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반대로 내가 싫어하고, 버려야 할 모습도 함께 표출 됐다. 일어나서 걷고, 먹고, 자고를 반복하는 데에도 뭘 그리 스스로에게 관대하지 못한 지. 그 단순함의 행복 속에서도 나는 치열하게 나와 싸웠다. 특히 메세타 평원 구간에서는 순례자들 모두 힘겨워했기에 잠시 누루고 있었던 본모습이 순간순간 표출되어 스스로도 놀랄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점점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예전보다 빠른 판단으로 상황을 바꾸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을 때는 이 길이 주는 묘약이라도 마신 듯 나에게 다시 칭찬을 해주게 되었다.



길의 중반을 넘었을 때 만나게 된 수도원에서 깨달은 건, 지금 이대로의 나는 충분하다는 것. 더 이상의 갈망도 후회도 없이 평온하다는 것. 늘 사랑 안에서 지냈으며, 가족은 짐이 아니라 그 무게는 사랑이었다는 것. 그리고 나에겐 지혜롭고 따뜻한 친구들이 많이 있다는 감사함.


몸과 마음이 함께 지쳤던 후반부에는 그 어떤 날보다 묵묵히 걸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각들을 조금 더 정리할 수 있었고, 단단한 마음과 몸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느긋하게 걷던 나는 그래서 더 외로왔는지도 모른다. 함께여서 의지가 되고 즐거웠던 길 위의 친구들을 하나둘씩 먼저 보내고 결국엔 조용히 혼자만의 길을 걸었던 것 같다. 그러다 사람이 그리우면 도네이션 알베르게를 찾아 그곳에 온 순례자와 봉사자들과 어울렸다. 짧은 만남이지만 같은 주제를 공유하며, 한 끼의 식사를 나누는 일은 온기 가득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태양이 뜨는 동쪽의 반대편을 향해 걷는 프랑스 길의 순례자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길엔 태양이 내 등뒤에서 나를 비춰준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 다다르면 태양은 나를 향해 비추인다. 이제 나는 태양의 정면을 당당히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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