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걸었다. 34.3 Km, Arźua에서 Monte do Gozo까지. 오전 7시에 출발해서 오후 5시에 도착했다. 오늘은 신기하게 계속 걷고 싶었다. 그렇게도 여유를 부리며 머무는 순례자를 자처하더니, 무작정 걷으니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의 Km 숫자가 점점 줄어드는 거다. 묘한 쾌감이 들었다. 작아지는 숫자가 자극제였을까? 공교롭게도 오늘의 날씨가 참으로 걷기에 훌륭했다. 해는 구름에 가려서 기온이 높지 않았고, 선선한 바람은 나무들을 흔들며 자연의 노래를 들려주었다.
7주가 넘게 걸렸던 이 길의 마지막에 다다르니 아쉬움보다 기쁨과 뭉클함에 마구 걷게 되었던 것 같다. 10Km가 남았다는 이정표 뒤에는 옥수수밭에 어린잎들이 하늘거렸다. 은근히 벅차오르는 마음에 어린아이처럼 쉬지 않고 갈리시아 지방의 울창한 숲을 걷고, 어느새 라코루냐주에 도착해 Monte do Gozo 언덕에 서서 저 멀리 보이는 콤포스텔라 성당 3개의 첨탑을 바라보았다. 세차게 부는 바람에 저절로 팔이 열리고 고개가 하늘을 바라본다. 경쾌하게 부는 바람은 그동안의 걸음걸음을 열정적으로 반겨주는 것 같았다.
길이 고르지 않아 걸을 때 계속 땅을 보게 되지만 7주 동안 배에 힘을 주고 어깨를 펴고 정면을 바라보며 당당하게 걷는 연습을 한 것 같다. 풍경들을 하나라도 더 담기 위해 느긋하게 걸었으며, 이 시간들을 즐기고 싶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후회는 하지 말기. 나를 아끼며 칭찬하기. 나를 사랑해 주기. 빠른 판단과 실행력으로 에너지를 아끼기.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행복했어도 그날 알베르게의 내 침대는 복도에 위치해 있어서 잠을 한숨도 청하지 못했고, 8시간 넘게 뜨거운 태양과 싸워가며 메세타 평원을 걷고 나서 땀에 흠뻑 젖어 그날의 목적지에 도착 후 시원한 생맥주 한잔으로 웃을 수 있었다. 가장 멋진 풍경을 본 날엔 발바닥에 물집이 한가득이었고, 새로 만난 길 위의 사람들과 즐겁게 지냈던 알베르게에선 베드버그에 물려 일주일 넘게 고생해야 했다.
언제나 모든 게 한 번에 이루어지고, 정확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또다시 걸으며 털어버리고, 연습하고를 반복했다. 영화 쇼생크 탈출의 엔디가 탈옥을 준비하며 벽을 긁어낸 돌과 흙을 매일 조금씩 운동장에 버리는 것처럼. 나도 걸으며 매일매일 덜어내고, 비우고, 다짐하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약 795Km를 걸었다. 종착지가 눈앞에 있기에 감사하며, 하루하루의 여정이 삶의 과정이었음에 감동적이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돌이켜보면 그 시간들이 꿈만 같이 아득하다. 이제는 그 경험과 과정들이 나와 함께 할터이니 더 풍성해진 나는 몇 시간 후 콤포스텔라 성당까지 한걸음 한걸음 위풍당당하게 걸어가리라. 그 옛날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러 갔던 예수님의 제자 산티아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