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m Caminho

by 조란마


있지만 없는 국경을 넘어 포르투갈의 남쪽 포르투에서 걷기 시작한 까미노 포르투게스 데 산티아고가 몇 시간 후면 평화롭게 마무리된다. 하지만 나의 새로운 길의 처음은 이랬다.


푸르디푸른 대서양의 거친 파도와 눈앞에 펼쳐진 망망대해를 벗 삼아 걷던 나는 몇 시간 만에 고민에 빠졌다. 나는 왜 또 길을 걷고 있는 걸까? 무엇이 나를 이렇게 정처 없이 걷게 하는 건가? 이 에너지는 갈망일까? 끈기일까? 열정일까?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가는 건 이미 한 번의 프랑스 길로 족하다 생각했다. 나는 그냥 새로운 길을 걷고 싶었을 뿐이다. 스페인이 아닌 다른 나라를 보고 싶었고, 걸으며 몸으로 부딪혀 만나고 싶었다.



오랜만의 푸름과 짠내가 가슴을 요동치게 했다. 쨍한 원색의 파라솔은 모래와 파란 바다하고 어우러져 화려한 색으로 칠한 그림처럼 예뻤고,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하나 남쪽으로 내려오니 기온은 평균 5도 넘게 올랐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하다가도 습하다가도 무겁다가도 무더웠다. 마치 나의 정신과 몸의 상태처럼 오락가락이었다. 대서양이 반가웠지만, 점점 강해지는 태양에 숨을 곳은 없었고, 습도로 인해 걸음도 함께 물을 먹은 듯 차츰차츰 느려지고 있었다.


나는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여기는 포르투갈이고 바다에 와서 해안길을 걷고 있지 않은가? 그걸로 충분하다. 고요하고 한적한 시골의 바닷가를 상상하며, 지역에서 나는 해산물과 와인을 먹으며 걷는 길을 상상했었다. 그렇게 버리고 버리고를 반복했건만 나는 여전히 나만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그 틀에 나를 가두고 있었다. 프랑스 길을 걸으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사해하며 눈물을 흘렸던 나는 혼란스러웠다. 더구나 해안길은 다양함의 연속이던 그 길과 다르게 단조로웠다. 내가 이렇게 고민하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재미가 없었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는 가슴을 트이게 했고, 모래 위 청량한 색들의 향현은 절묘한 양념을 한 듯 맛깔나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걷는 내내 단순하다고 생각이 드는 건 왜였을까? 나는 이제 한 단계 진화 한 건가? 그간 다양한 아름다움을 몰아서 보고, 느껴서 이제는 더 커다란 자극이 필요한 건가? 이것은 긍정인가? 부정인가? ….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각들은 분명 이전에 날아다니던 생각들과는 또 다른 양상이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내 몸의 상태였다. 그동안 쉼 없이 계속 걸었고, 달라진 날씨 특히 해안가의 날씨에 적응하느라 은연중에 신체는 정신의 힘을 넘어서서 이제는 지쳤다고 파업을 선언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지친 몸은 얼마 전까지 걷던 프랑스 길 위의 내가 스스로 성스러웠다고 단언한 자만심 위에 커다란 파도를 쳐서 무참히 덮쳐버렸다.



해안길 2일을 걷고, 2일은 걸음을 멈추었다. 카페에선 갈라오와 나타로 행복했고, 해산물이 잔뜩 들어간 음식을 사 먹고, 은은한 탄산이 매력적인 비노 베르데 화이트 와인을 마셨다. 머물 알베르게가 있었고, 다양한 음식을 먹으며 다시 여유를 되찾았다. 그리고 빌야 도 콘도의 마르티네스 교회 옆으로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길의 방향을 전환하기로 했다. 바다는 그 자리에 두고 나는 내륙길로 향하기로.


고즈넉하면서도 단단한 인상의 내륙길은 볼거리가 풍부했다. 집 담장 안의 포도나무 열매도 울퉁불퉁 못생긴 레몬이 자라는 것을 보는 것도 마냥 신이 났다. 길에서 만난 후앙의 한국 사랑이야기를 듣는 것도 즐거웠고, 싸고 푸짐한 음식들이 먹는 내내 기쁨을 주었다. 무엇보다 따뜻했던 건 길을 걷는 내내 항상 눈을 마주쳐 인사해 주는 사람들이었다. 무뚝뚝해 보이지만 순박하고 다정한 마음이 고요하게 전해졌다. 고온경보로 푹푹 찌는 날씨에 또다시 적응을 해야 했지만 길의 방향을 바꾸니 금세 생기를 되찾았다.



무엇이 나에게 힘을 주는가? 까미노를 걷는 사람들은 매번 묻는다. 왜 이 길을 걷고 있냐고? 왜 이 길을 걷게 되었냐고? 그것은 새로움이었다. 매일매일이 다르고, 새로움의 연속. 그 안에서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전혀 다른 에너지를 얻게 되고, 그 과정안에서 나를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물론 오늘 하루 내 몸을 뉘일 침대를 찾아야 하고, 내가 원하는 방식과 방법대로 되지 않을 때는 많지만 그것 또한 이 길이 주는 매력이리라.


매일 해는 뜨지만 그 일출의 모양과 빛의 세기는 달랐다. 또 매일 해는 지지만 그 일몰의 시간과 석양의 물듬이 달랐다. 새로움을 열망하지만, 그 마음이 평안한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그 새로움이 자극이 아닌 성장과 기쁨의 열매가 되어 자라나길. 그리고 그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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