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토가 말한다. “산티아고는 잃어버린 도시”라고. 모두의 종착지인 이곳의 또 다른 이름. 쉼 없이 달려온 목적지는 도착의 환희를 안겨줌과 동시에 방향을 멈추었다. 노란 화살표는 더 이상 내가 갈 길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이제 어느 곳을 향해 갈지는 온전히 나의 몫이 되었다.
낯선 길 위의 안내자이자 동반자였던 노란색 화살표. 그간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넘나들며 꽤 많이 의지했었나 보다. 마치 열정적으로 사랑하다 갑자기 헤어진 애인처럼 수많은 길 위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간다. 오래된 영사기가 돌아가듯 아득하고도 아련하다. 그 길은 나에게 새로운 모험이었고, 커다란 선물이었다. 겹겹이 쌓인 이야기들은 나에게 녹아들어 온화하지만 강한 심장을 만들어 주었고, 엉켜있던 머릿속의 살타래들은 조금씩 풀어져 점차 맑은 영혼의 소유자로 거듭나게 되었다.
충분히 아름다웠던 까미노였다. 포르투갈길을 마치고 다시 도착한 콤포스텔라 성당 앞은 여전히 환호와 기쁨이 넘쳤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공허함이 감돌았다. ”이제 나는 어디를 향해 다시 걸어야 하지? “ 멈추고 싶지 않은 마음, 아직은 더 걸어야 할 것 같은 이 갈등이 나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고민은 산티아고에서 며칠을 지내는 동안 계속 됐다. 해답을 찾지 못할 때는 잠시 멈추어야 한다는 방법을 이 길에서 배웠기에 알베르게에서 다양한 순례자들과 교류를 하며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두었다. 그곳에서 만난 이들은 한결같이 말해주었다. 마음을 따라가라고, 어디든 가서 걸으면 되는 길이 세상에 너무나 많다고. 맞다! 내 마음이 움직이는 곳, 그곳이 노란 화살표인 것을 잠시 잊고 있었나 보다. 고요하면서도 단단한 힘이 있는 내 마음속의 화살표를 말이다.
그렇게 나는 다시 길을 떠나왔고, 갈리시아 지방의 북쪽, 까미노 잉글레스로 왔다. 그러자 이번엔 신기하게도 채워지기 시작했다. 예전에 길을 걸으며 조금씩 비워졌던 그 공간에 딱 그만큼의 양으로 하나씩 다양하게 채워지더니 점점 균형이 잡혀갔다.
언제나 여행의 마지막은 사람. 결국 이번 까미노도 사람을 통해서 채워지게 되었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배우고 나누고 웃고를 반복하다 보니 내 안의 빈 공간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방향이 멈추었을 때의 두려움도 그들이 내 안의 화살표를 켤 수 있게 도와주었고, 내 안의 공간도 그들이 사랑으로 채워주었다.
이제는 예전처럼 길의 감사함에 눈물을 흘리지는 않는다. 담담함으로 마주하고, 받아들이며 미소를 짓는다.
그토록 되찾고 싶었던 환한 웃음을 이 길 위에서 다시 받았다. 그리고 맑은 영혼을 지닌 친구들을 만나 함께 시간을 공유할 수 있어서 참으로 즐거운 길이었다.
“산티아고는 시작의 도시“이다. 길은 여기서 다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