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밤 더디 새소서

달밤_이호우

by ean


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

무엔지 그리운 밤 지향 없이 가고파서

흐르는 금빛 노을에 배를 맡겨 봅니다.


낯익은 풍경이되 달 아래 고쳐 보니

돌아올 기약 없는 먼 길이나 떠나온 듯

뒤지는 들과 산들이 돌아돌아 뵙니다.


아득히 그림 속에 정화된 초가집들

할머니 조웅전에 잠들던 그날 밤도

할버진 율 지으시고 달이 밝았더이다


미움도 더러움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온 세상 쉬는 숨결 한 갈래로 맑습니다

차라리 외로울망정 이 밤 더디 새소서

- 이호우, '달밤'




“진짜로 똥글똥글한, 동그라미를 그리고 싶어.”

아이가 컴퍼스를 사달라고 한다.

콧잔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지도 모르고 그리기에 몰두한다.

같지만, 다른 원을 셀 수 없이 많이도 그려댄다.

도화지에, 책상에, 방안에,

아이의 손에, 얼굴에,

‘똥그란’ 것들이 넘실댄다.




까만 도화지 위, ‘쟁반같이 둥근’ 달.


한 쪽 눈을 지그시 감는다.

가장 창백한 하늘의 중심을 찾는다.

컴퍼스 침을 꽂는다.

심호흡 후, 컴퍼스를 천천히 돌린다.

가을이 색을 채운다.


그렇게 진짜, 똥그란, 달이 그려진다.

온기를 찾은 하늘.




달에게 묻는다.

잘 비추고 있는 지...


이 밤,

너 또한 달에게 묻고 있겠지.


마음 안의 소소함을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달.


달&

함께 보고 있고,

함께 듣고 있고,

함께 느끼고 있으니.


진짜 동그란, 동그라미의 따뜻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달밤이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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