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입고 있다.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_정희성

by ean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정희성,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잠을 이룰 수,

밥을 먹을 수,

이야기를 할 수,

도 없이, 몹시 앓았다.

어쩔 수,

도 없이, 몹시 차가워졌다.


몸이 시리다.

겨울을 닮고 있다.

속까지 뿌리깊이 얼어 버렸다.




네가 올 수 없는 시간,

네가 올 수 없는 곳에

네가 와서,

나를 보고 있다.

몹시 앓은 나보다 더 수척한 네 눈빛.


(아파서, 미안해.)

말보다 앞선 것들이 흐른다.


창백해. 눈 감아.


병실 침대에 누운 내 손을 꼭 쥐고 있다.

내내 무릎 꿇고 있다.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감고 있는 내 눈에 내리는 네 눈빛이 따스하다.

네 온기가 손을 지나 몸으로, 속으로 퍼진다.




네가 떠나고,


그 후,

네가 남기고 간,

네 진청빛 점퍼에 코를 파묻고 있다.

그렇게 다사로운, 너를 입고 있다.


어쩐 지, 너와는 자꾸만 ‘함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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